[데일리메디 고재우 기자] 지난 1919년 3월 1일, 우리나라에 잊혀 지지 않을 이 날은 세브란스병원에도 특별한 날이다. 세브란스 의사·간호사·교직원 등은 독립운동 준비부터 독립선언문 배포까지, 3·1운동의 한 복판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 2월말 기준으로 국가보훈처로부터 독립운동 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세브란스 출신은 김필순 등 의사 20명, 이정숙 등 간호사 명, 스코필드 등 교직은 5명 등 총 32명에 달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들을 포함해 학생 등 독립운동에 참여한 세브란스 출신 의인들은 60여 명을 훌쩍 뛰어넘는다.
민족대표 33인 중 한명인 이갑성부터 사진사 이일선까지
세브란스병원 직원으로 3·1운동에 참여한 인물로는 이갑성, 정대영, 이일선 등이 있다. 민족대표 33인 중 한명이었던 이갑성은 3·1운동 조직과정부터 관여했고, 세브란스의전 학생 인맥을 활용해 전라도·경상도까지 독립선언서와 3·1운동 계획을 전달했다.
세브란스병원 회계직 사무원이었던 정태영은 1919년 3월 2일 밤 11시 종로 보신각종을 타종해 시민들에게 독립선언을 알렸는데, 이는 3·1운동 시작을 국내외로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세브란스병원 사진사였던 이일선은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 소식을 알리고자 신문을 발간·배포해 독립운동을 널리 알렸다. 세브란스병원 엑스선실에서는 독립신문·반도목탁·국민신보 등이 발간됐다.
이들은 징역 7개월에서 2년 6개월까지 구형을 받았고, 광복 후에는 독립운동 유공자로 인정됐다.
전국 각지에서 일었던 독립운동 중시에 배동석·송춘근
3·1운동의 물결은 대한민국 전역으로 퍼졌다. 이 과정에서 세브란스병원 출신 학생들은 서울 뿐만 아니라 지방의 독립운동에도 적극 가담했는데, 배동석(1918년, 입학)·김병수(1921년, 졸업)·송춘근(1923년, 졸업)·양재순(1925년, 졸업) 등이 주인공이다.
송충근은 서울에서 만세시위에 참가했고 체포됐다. 배동석은 김해·마산·함안 등 경남지역의 3·1운동을 주도했다. 그는 학생 중 가장 긴 징역 1년형을 선고 받았고, 이후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김병수는 서울에서의 독립운동 뿐만 아니라 고향인 군산에서 학교 은사인 박연세를 방문해 이갑성에게 받은 독립선언서를 전달했다. 이 결과 군산에서는 전북지역 최초로 만세시위가 일어날 수 있었다.
충남 공주 출신이었던 양재순은 공주 시내에서 군중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며 만세를 부르다 체포됐다.
3·1운동 부상자들을 돌본 세브란스병원 간호부양성소
3·1운동 부상자들을 돌본 이들은 세브란스병원 간호부양성소에서 교육을 받던 견습생들이었다. 3월1일 시작된 만세운동이 같은 달 5일 남대문정거장 앞으로 이어지면서 부상자들이 속출했다.
간호 견습생들은 시위현장으로 달려가 부상병을 돌봤고, 현직 간호부 11명은 붕대를 휴대하고 군중 속에 있다가 체포당하기도 했다. 이정숙·노순경·박덕혜·이도신·김효순·박옥신·윤진수·이성완·이아주·장윤희·채계복 등이다.
이들은 대부분애국부인회에 참여해 독립운동가들의 옥바라지와 독립자금모금 등 역할을 지속했다.
1919년 12월 2일에는 4명의 세브란스병원 간호사, 박덕혜, 노순경, 이도신, 김효순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태극기와 붉은 글씨로 쓴 ‘조선독립만세’의 깃발을 들고 만세를 외쳤다. 3·1운동에 참여했던 간호부 중 7명, 김효순, 노순경, 이도신, 이성완, 이정숙, 정종명, 탁명숙은 독립운동 유공자로 서훈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