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인턴들 외침 공간 '대나무숲' 파장
전공의협, '수련병원 인턴, 어디까지 해봤니' 익명코너 코너 오픈
2016.02.24 12:22 댓글쓰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꽁꽁 숨겨온 비밀을 세상 밖으로 폭로한 동화 속 ‘대나무숲’ 같은 공간이 의료계에도 생겨났다.

인턴들이 익명으로 병원 내 이야기와 불만들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공간인데 이에 따른 파장도 예상된다.

대한전공의협의회(회장 송명제)가 대전협 홈페이지와 닥터브릿지 사이트,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접속할 수 있는<수련병원 인턴, 어디까지 해봤니?>라는 이름의 익명게시판을 개설, 3월말까지 공개 운영할 방침이다.

23일 익명게시판이 공개된지 두시간도 채 안 돼 수련병원들의 적나라한 민낯이 드러났다.


“G모병원 응급실과장 1.초진 늦어지면 뒤에서 노려보고 있다가 온갖 욕을 함 2.자기 기분 안 좋은 날엔 노티 잘해도 온갖 트집을 잡아 욕을 함. 멍청아부터 시작해서 온갖 굴욕감을 줌 3. 인턴 퇴근을 자기 멋대로 함. 인사안하고 갔다고 퇴근한 인턴 불러 3시간 더 일하게 함. 4 인간적으로 참긴 힘든 욕을 함.” (게시글에는 해당 병원명이 공개돼있으나 기사에는 익명처리했다.)

그러자 바로 이에 대한 댓글이 달렸다.

“기록 남길 때는 그 사람 아이디로 남겨서 근무한 것처럼 해서 돈은 다 챙긴다며?”, “자기 아이디로 하라고 함. 돈은 자기가 다 챙김. 사체 검안만 인턴 아이디로 하라고 함. 자기가 책임지기 싫으니까” 등이다.

또 다른 글이다.

“지방 2차병원에서 곧 1년차 시작합니다. 제 동기가 인사과 찾아가서 근로계약서 안 쓰냐고 물어보니 그런 거 없답니다. 애초에 우리병원은 전공의 시작하면서 근로계약서 따위는 쓴 역사가 없다는군요. 근로조건이나 휴가 같은 게 문제가아니라 아예 서식조차 없으니 이걸 어디서부터 따져야하는지 정말 막막합니다. 원래 이런건가요. 아니면 우리 병원이 특이한건가요?”

“의사가 수액라인 잡고 샘플하는 C대학병원. 간호사 노조파워 장난 아님. 교육수련부도 비의사편.” (병원명 공개돼있음)

“대전 모 대학병원 인턴이 간호사 오더 받음. 병가도 못쓰게 한다.”

“입사할 때 월 10만원씩 추가로 주기로 한 수당과 작년 추석과 올해 설 명절상여금, 휴가비와 연말정산환급금까지 병원이 홀드하고 있네요. 인턴 줄 돈으로 이자를 불리다니.”

“2주 먼저 들어와서 일하라 해서 했더니 이젠 2주일 늦게 나가라고 하네요. 따지니까 인턴 수료 취소한다고 하고. 이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댓글에서 병원명 자음 공개)

병원명을 모두 공개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병원 소재 지역이나 병원 명칭의 자음 또는 이니셜로 표기했다. 하지만 게재된 내용을 근거로 해당 병원들을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무래도 병원들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막을 수도 없는 일이다. 수년 전부터 인터넷의 익명성을 활용해 직장인들이 사내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공유하고 기업 및 기관 등을 직접 평가하는 애플리케이션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파장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 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대한항공, 두산인프라코어 등 기업들의 내부사정이 밖으로 흘러나와 공론화됐을 뿐만 아니라 기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된 바 있다.

대전협은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잠시라도 인턴 수련을 받았던 의사들이라면 누구나 익명으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라며 "익명게시판을 통해 인턴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수집하기 위한 일환으로 이를 개설했다"고 밝혔다.

수련병원 내 ‘인턴’은 정부가 인정한 의사 면허를 취득한 의료인으로 보건복지부가 인정한 수련병원에 소속돼 임상 각 과목의 실기를 수련하도록 정해져 있다.

하지만 위계질서가 강한 병원 조직 내에서 을(乙)로 여겨지기 일쑤이고 병원의 수련 체계와 환경을 둘러싼 논란이 잇따르고 있는 실정이다. 

대전협은 “모바일과 PC를 통해 쉽게 접근 가능한 익명게시판을 활용해 진행되므로 참여도가 굉장히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어 “수집된 사례들을 통해 현행 인턴 제도의 문제점들을 파악하는 것은 물론 인턴제 폐지 등을 포함한 큰 틀에서의 수련제도 개편과 개별 수련병원 환경 개선을 위한 소중한 자료로 사용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송명제 회장은 “인턴수련의 문제점은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지적돼 왔다"며 "현장에서 경험한 당사자들의 문제점을 듣고, 수련을 좀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자료로 삼고자 한다”며 인턴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
메디라이프 + More
e-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