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법봉에 흔들리고 파괴되는 ‘의사 진료영역'
보톡스·뇌파계 이어 레이저까지 모호···법원 “시대 상황따라 면허범위 가변적”
2016.08.31 06:12 댓글쓰기

모호한 의료법상의 면허 범위가 의사들의 진료 영역을 축소시키는 ‘독(毒)’이 되고 있다.

의료계에서 강력하게 반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대법원이 ‘시대 상황에 맞는 합리적인 법 해석’을 명분으로 잇따라 보톡스와 프락셀 레이저를 치과의사 면허 범위에 포함시키면서다.


“한의사도 뇌파계를 이용해 파킨슨병 및 치매를 진단할 수 있다”는 서울고법 판결까지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되면 의사들은 ‘현대 의료기기 전쟁’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의사·치과의사·한의사 허용 새 의료행위 영역 등장 가능" 


대법원1부는 지난 29일 안면 프락셀 레이저 시술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치과의사 이모(49)씨의 상고심에서 “치과의사의 안면 레이저 시술은 치과의사의 면허 범위에 해당 한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치과의사의 안면 레이저 시술은 구강악안면외과의 범위에 속할 뿐만 아니라 사람의 생명, 신체나 일반 공중 위생상의 위험을 초래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지난 7월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치과의사 보톡스 시술’ 판결과 맥을 같이 한다.


대법원 관계자는 “최근 치과의사의 보톡스 시술이 면허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판단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있었다”며 두 판결이 유사한 취지임을 시사했다. 그러면서 “치과의사의 안면부 시술이 전면 허용된 것은 아니”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환자의 눈·미간에 보톡스 시술을 한 혐의로 기소된 치과 의사 정모(48) 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안면 보톡스 시술이 치과의사의 면허 범위를 벗어났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무죄 취지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의료법에서는 각 의료인의 면허 범위와 판단 기준을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고 있다”면서 “이는 개별 사안 별로 시대적 상황에 맞게 합리적으로 법을 해석하라는 취지”라고 밝혔다.

이어 “새로운 의료행위에 대한 판단은 의료기술의 발전과 시대 상황의 변화, 수요자의 인식과 필요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의약품과 의료기술 등의 변화와 발전을 반영해 각 의료인에게 허용되는 새로운 의료행위 영역이 생겨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 행위의 개념과 범위의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 둔 것이다.


재판부는 ▲학문적 원리 ▲경위·목적·태양 ▲교육과정이나 국가시험 등으로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는 지 등을 판단 기준으로 삼아 “치과의사의 보톡스 시술로 인한 공중보건에 대한 위험이 현실적으로 높지 않고, 체계적 교육 및 검증과 규율이 이뤄지는 한 환자의 선택가능성을 열어두는 방향으로 법령을 해석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결론 내렸다.

"의료법 개정으로 의료인 면허 범위 명확케 해야"


사법부의 사회 통념에 따른 면허 범위 해석은 한의사가 뇌파계를 사용해 파킨슨 및 치매 진단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길도 열었다.


서울고법 제2행정부는 지난 18일 뇌파계로 파킨슨 및 치매를 진단한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가 보건복지부장관을 상대로 낸 면허자격 정지처분 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1심을 취소하고, 이씨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의료기술의 계속적 발전과 함께 의료행위의 수단으로서 의료기기 사용이 보편화 되는 추세에 있다”면서 “의료기기 용도나 작동원리가 한의학적 원리와 접목돼 있는 경우 등 한의학적 범위 내에 있는 의료기기 사용은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과학기술 발전으로 의료기기 성능이 대폭 향상돼 보건위생상 위해 우려 없이 진단이 이뤄질 수 있다면 뇌파계 개발과 진단 등이 현대의학 원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상황만으로 한의사가 뇌파계를 사용한 것이 면허 이외 의료행위라고 할 수는 없다”고 못 박았다.

대법원에서 2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면 뇌파계를 사용한 한의사의 파킨슨 및 치매 진단 행위는 한의사의 면허범위가 된다.

이와 관련, 대한한의사협회는 “이번 판결은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중요한 법적 근거가 될 것이며, 의료기기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법부의 입장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탄으로 생각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불명확한 면허 범위로 인해 치과의사, 한의사에게 진료 영역을 내주게 되자 의료계는 촉구하고 나섰다.


대한의사협회는 “사법부 판결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보건위생상의 위해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국회와 보건복지부가 나서서 의료법상 의료인의 면허범위를 보다 구체적으로 확정하는 등 즉시 관련법을 명확히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면허 범위를 명확히 구분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각 의료인의 전문적 지식과 경험을 고려하지 않은 채 면허의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것은 의료인 면허제도의 근간을 뿌리 채 흔드는 것”이라며 “의료영역은 비전문가인 법관의 판단에 맡기지 않고, 의료전문가단체 스스로 자체적으로 해결해나갈 것”이라고 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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