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최근 의료계 다양한 정책적 논의에 있어서 빠지지 않는 핵심 키워드는 ‘필수의료’ 다. 우리는 ‘비필수’ 혹은 ‘선택’ 의료와 같이 보편적 의료서비스에서 배제할 수 있는 특정 영역을 어떻게 규정할 것이냐는 질문을 역으로 던져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필수의료를 둘러싼 혼란은 그 단어 자체로부터 내재한 것이라는 냉소적 결론에 이르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심혈관중재시술 의사 시각에서 보는 필수의료
하지만 필수의료는 최근 수년 간 우리나라 의료 문제와 개선점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미 널리 활용되고 있어 그 개념을 배척하기는 쉽지 않다.
2018년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은 응급・외상・심뇌혈관 등 생명과 직결된 필수중증의료 강화, 건강취약계층 의료서비스 확대, 공중보건위기 대응 및 안전체계 구축 등 국가가 개입해야 하는 보건의료서비스 영역을 필수의료 범위로 규정하고 있다.
2019년 이상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위원 기고에서는 필수의료를 응급・외상・감염・분만 등으로 필수불가결한 의료서비스 또는 최소한 인권적 차원에서 환자들에게 제공돼야 할 의료서비스로서 ‘의학적으로 필요하며 현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공적 의료보장에 우선시 돼야할 의료서비스’라고 말하고 있다.
정리해보면 1) 국민 생명 및 건강권 보호라는 핵심 가치를 다루며 2) 국가적인 체계 마련이나 지원을 통해 국민들 건강권이 보호될 수 있는 분야 혹은 국가 역할 수행 그 자체가 필수의료를 규정하는 요소가 된다.
이러한 요소들은 이분법적으로 나뉘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정량적 평가로 반영돼야 한다.
이분법적 해석으로 해결 가능할까? 열악한 분야=필수의료 분야 정의도 맞는지 의문
1)의 내용을 살펴보면 해당 분야가 다루는 주요 질병이 심각한 장애나 생명에 미치는 영향, 의료 행위 과정에서 환자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 인력・시설・숙련도・응급대응 등 의료 질 향상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국민 생명 보호와 건강권 향상 수준이 평가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료 영역에 대한 구체적인 분류와 규정, 해당 영역의 질환이나 의료행위 효과가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에 대한 객관적 평가 등과 관련해 우리나라에서 합의된 방안이 없다는 점에서 파생되는 정의 또한 애매하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현재 필수의료 논의 과정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은 주로 2)의 요소, 즉 현재 체계 하에 보상과 지원이 열악해 국가의 적극적 개입과 지원의 필요성의 우선 순위에 놓여있다는 점을 들어 각자 그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는 그간 ‘비인기과’ 관련 정책 수립 및 집행 과정과 거의 동일하다. 그 분야가 붕괴하고 심각한 피해가 드러난 이후 겉으로 드러난 문제를 겨우 가리는 식의 미봉책이 반복되었을 뿐 결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실패를 거듭해왔다.
전공의 지원 사업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실질적 효과가 없음에도 임시적인 지원 방편에 겨우 의존하며 오히려 현실을 호도하는 부작용만 초래한 것이다.
결국 국가 개입 필요여부 판단은 현 시점에서 드러난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의료 특정 분야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공공이 지원해야 할 요소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단계에서 출발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소위 열악하고 소외된 의료 분야라는 근거만으로 필수의료 기준으로 삼고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은 결국 ‘사후약방문’ 대책에 불과하며 실패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심혈관중재시술 의료공백 커지지만 현실은 개별 인력 확보로 해결하는 실정
심혈관중재시술 분야는 다루는 질병과 치료적 범위가 명확하며 국민 생명 및 건강권 보호와 직결된 의료 영역이다.
최근 강원 영서 지역의 급성심근경색 환자들은 응급 심혈관중재시술을 담당할 중재시술 전문의 부족으로 인해 1~2시간 가량 고속도로를 달려 원주까지 이송되고 있다.
이들은 적절한 시점에 응급시술을 시행 받는 환자 대비 최소 50% 이상 사망률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의료 공백 가능성에 대해 정부와 지역사회는 과연 사전에 인지하고 대응 방안을 준비했는지 알려진 바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가 불거진 뒤에도 이를 해소하기 위한 사회적, 정책적 방안보다는 해당 지역 의료기관들이 대우와 임금을 조정해 개별적 인력 확보에 나서거나 다른 기관으로부터 임시적인 파견 인력을 수혈하는 등의 방편으로 해결을 기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비단 심혈관중재시술 영역뿐만 아니라 소위 필수의료 영역이라고 일컫는 다양한 분야에서 이런 문제들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다.
더구나 필수의료에 대한 주요 대책으로 꼽는 것이 ‘의사 수 증대’와 같은 원시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중증의료 및 응급의료, 지역사회 의료에 기여하던 의사들이 진료 현장을 떠나고 신규 진입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은 근무시간은 물론 노동 강도, 급여, 위험 수준과 같은 다양한 요소를 감안한 개별 의사들의 합리적 결정의 '총체적 결과'다.
의사 증원으로 필수의료 해결될 수 있다는 기대, 합리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 수가 늘어나면 그에 비례해 필수의료 의사수가 증가할 것”이라거나, “전체 의사들의 과잉 경쟁을 통해 수입을 떨어뜨리면 소외되던 필수의료 영역으로도 유입을 기대할 수 있겠다”는 식의 예상은 결코 객관적 근거에 전제한 합리적 방안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다.
이 같은 이슈가 정치적 언어와 뒤섞여 본질적인 논의를 어지럽히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길 바란다.
심혈관중재시술 분야는 한계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밤샘 당직근무에 응급시술까지 한 심혈관중재시술 의사는 오늘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종일 외래나 시술에 몸을 혹사당하고 있을 것이다.
심혈관중재시술 의사들은 환자와 생사 경계를 넘나드는 사투를 함께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갑작스러운 의료소송, 나아가 형사처벌 가능성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아슬아슬하고 막연한 불안감에도 적응해야 하는 숙명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러한 여건 속에서도 그 역할과 위험까지도 온전한 직업적 소명으로 받아들일 것을 강요할 수는 없다. 보편적인 의료의 제공을 위해 국가와 사회 지원은 반드시 필요하며, 그 지원이 보다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할 필수의료 영역도 분명 존재한다.
적절한 시설 마련을 위한 지원과 함께 의료 인력에 대한 지원은 실제 근무하는 부담과 역할에 따라 적절하고 효과적인 수준으로 직접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필수의료 영역 인력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들을 지위와 대우를 향상시킬 수 있는 사회적 합의점을 마련해야 한다.
의료사고처리 특례법 마련은 선의의 의료에 대해서도 형사적 책임에 직면하는 모순적 상황을 바로잡는 최소한의 과정이 될 것이다.
최근 몇몇 사례와 경험이 공론화되며 “필수의료에서 역할을 수행할 전문인력들이 갈수록 부족할 것”이라는 우려가 더 진지하게 다뤄지고 있다.
성급하고 임시적인 방편이 아니라 장기적 시각에서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그 효과를 유지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현장 목소리를 경청하고 지속적인 노력을 함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에는 부디 치열한 논의와 고민을 바탕으로 근본적인 변화와 개선을 이룰 수 있는 결과가 도출돼 우리 사회의 성숙과 발전을 증명하는 성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