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격차’다. 후배의사들이 선배의사들에게 느끼는 격차, 인기과목과 비인기과목의 격차, 근무하는 병원간 격차 등이다. 의사의 평균 수입은 꾸준히 증가하지만 표준편차는 더욱 커지는 것을 보면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둘째는 ‘규제’이다. 환자 상태를 고려하여 최선의 치료와 처방을 했는데 복잡한 급여기준에 맞지 않으면 삭감을 당하다보니, 전문가로서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
셋째는 ‘배운대로 하지 않는 것이 유리한 제도’때문이다. 최근 의협회장도 인정했다시피, 일부 의사들은 배운 범위를 넘어 비급여와 과잉진료를 해왔다. 그가 주장하는 ‘저수가’의 진위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현재의 행위별수가제가 수입 창출을 위한 불필요한 의료행위를 통제하지 못하고 급격한 의료비 상승을 부추겨온 것이 사실이다.
필자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포괄수가제가 이러한 의사들의 고민을 푸는 핵심정책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행위별수가제는 앞서 언급했듯 의사 상호간 ‘격차’를 발생시키고, 의사의 양심을 훼손하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포괄수가제를 당연적용하려는 이유는 의사협회가 주장하듯 의료비 지출을 억제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적정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적절한 가격에 향유할 수 있다면, 자연적으로 늘어나는 의료비 지출은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05~’09년동안 급여비 증가 기여도 분석결과, 급여지출 증가의 70%가 행위량 증가에서 기인했다는 분석은 우리 의료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분명히 존재하는 중복, 과잉진료를 바로잡지 않고, 늘어나는 의료비 지출을 충당하기 위해 보험료를 인상하겠다고 하면 과연 국민들의 동의할까?
그렇다면 의료계는 왜 포괄수가제를 반대할까? 첫째, 경제적인 이유가 크다. 포괄수가제는 입원진료부분에서 비급여항목들이 급여화되는 효과가 있다. 환자입장에서는 보장성이 확대되는 것인데, 병원입장에서는 수익이 악화된 것이라고 우려한다. 더욱이 정부가 수가인상을 제대로 해주지 않으면 수익은 더욱 줄어들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둘째는 의사와 환자의 갈등요소이다. 의사에게 가해지는 경제적 제약으로 충분한 서비스를 받고자하는 환자와 가급적 서비스 양을 줄이고자하는 의사간 갈등의 소지가 있다. 의료서비스의 과소공급은 의사를 환자와의 갈등관계로 내몰고 의료의 질을 저하시켜 국민의 건강을 해친다는 논리이다.
물론 모두 일리가 있다. 그래서 정부는 이러한 우려가 현실화되지 않도록 대비책을 마련하면서 포괄수가제의 장점이 잘 발현될 수 있도록 세심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먼저 정부는 지불제도 변화에 따른 적정수가 산정으로 의사가 ‘배운대로’ 소신껏 진료할 수 있도록 진료 여건을 조성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의료기관의 진료내역을 수집하여 최근의 의료현실과 진료행태를 반영하고, 관련학회, 의료계, 전문가 등의 의견수렴을 거쳐 수가개정안을 마련했다. 이것은 지난 3월부터 안과․산부인과․외과․이비인후과 등 4개 관련분야 학회․협회와 37차례 회의를 개최하고 의협․병협을 포함하는 종합간담회를 통해 도출하였다.
아울러, 앞으로 물가변화 등 여건변화를 수가수준에 객관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수가조정기전’을 연말까지 마련하여 적용할 계획이다. 수가조정기전에는 기존의 유형별 환산지수와는 별도로 포괄수가용 환산지수를 마련하여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하고자 한다. 또한, 올해부터 표준화된 비용수집․분석과 원가에 기반한 수가책정방식에 대한 연구를 시작해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환자의 다양한 임상적 상황에 따라 적합한 수가가 책정될 수 있도록 현재의 61개 환자분류를 78개로 세분화하였다.
또한, 그간의 시행결과와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포괄수가제로 인한 질저하는 없었으나, 혹시 모를 질저하를 막기 위해 수차례 전문가 자문회의를 거쳐 마련된 3개 범주 18개 지표를 통해 의료 질을 평가하는 한편, 의료계가 자발적으로 임상진료지침과 병원내 임상경로 개발 등 질향상 노력을 할 수 있도록 과감하게 지원해나갈 예정이다.
우리는 지금 의료현장의 왜곡을 없애고 건강보험제도를 지속가능한 제도로 발전해나가기 위한 전환점에 서있다. 정부는 이 제도개선을 추진함에 있어 충분한 의견수렴과 토론 등 민주적 과정을 통해 서로 이해를 넓혀나갈 준비가 되어 있다. 의료공급자, 소비자, 정부와 보험자가 모여 지혜를 모으면 서로 신뢰할 수 있는 보건의료체계로 만들어나갈 수 있다. 신뢰야말로 제도의 지속가능성에 필수 요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