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의 골은 생각보다 깊었다
. 직능 간 이해상충은 번번이 정책의 발목을 잡았다
. 그 사이에서 균형추 맞추기는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다
. 100% 만족하는 정책은 없다고 하지만 의료정책은 유독 험난했다
. 의사 출신 장관이라는 잇점을 살리기에는 직능 간 갈등이 너무 첨예했다
. 중도에 접거나 밑그림 조차 그리지 못한 정책들이 더 쓰라린 이유다
. 그럼에도 한국의료의 미래를 위해 낙담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 이해관계를 넘어 국민건강을 위한 선 굵은 정책을 중심으로 수정작업을 진행했고
, 소기의 성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 아울러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도 설정했다
. 취임
1년
4개월을 맞은 보건복지부 정진엽 장관
. 그는 최근 전문기자협의회와의 간담회에서 대한민국 의료에 대한 담론
(談論)을 설파했다
.
중소병원 살리기 프로젝트 속도
정진엽 장관은 반론의 여지가 없는 중소병원 위기를 주목했다. 중소병원 위기는 대한민국 의료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이들을 위한 소생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중소병원 활성화의 가장 큰 숙원으로는 간호등급제를 꼽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중소병원 회생을 논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 때문이다.
실제 중소병원의 82.5%가 7등급 판정을 받아 입원료 감산 패널티를 적용받는다. 이들 병원의 78.9%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아예 신고조차 하지 않아 자동 7등급으로 분류된 상태다.
정 장관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실무부서에 현재 허가병상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간호등급 산정 방식을 소요병상 중심으로의 재편을 지시해 놓은 상태다.
현행 기준으로는 병상가동률이 떨어지는 중소병원들이 낮은 간호등급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만큼 보다 현실적인 방법으로 산정토록 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실제 요양기관별 병상 가동률은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92.7%로 높지만 중소병원들은 60~80%수준에 머물러 있다. 비어 있는 병상까지 합산되다 보니 간호등급이 낮게 책정되는 구조다.
정진엽 장관은 “당초 허가받은 병상을 모두 가동하지 못하는 중소병원들이 상당수”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허가병상이 아닌 운영병상을 기준으로 등급을 책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운영병상 기준 적용시 소요되는 건강보험 재정이 문제다. 보건복지부 추계로는 약 4000억원의 재정이 추가 발생할 전망이다.
정진엽 장관은 “결코 만만한 규모가 아니다. 다양한 보완책을 고민 중이다. 가장 효율적인 개선방안을 찾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차의료 활성화 총력
위기는 개원가 역시 마찬가지다. 의료정책연구소 조사결과 상당수 의원급 의료기관이 운영에 필요한 최소 환자 수도 채우지 못하고 있으며, 의원 한 곳당 평균 3억7000만원의 부채를 안고 있었다.
실제 의원 1831곳 중 44.9%가 하루 평균 50명 이하의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루 평균 외래환자가 25명 이하인 의원도 17% 가량 됐다.
의원급 의료기관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일평균 최소한 40~50명 정도의 환자를 진료해야 한다는 게 의료정책연구소의 설명이다.
경영난은 폐업으로 이어진다. 지난 2009년 문을 닫은 의원급 의료기관은 1487개소였지만 5년 뒤인 2013년에는 1536곳으로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개원한 의원은 1986개소에서 1831개소로 줄었다.
정진엽 장관은 위기에 처한 일차의료를 되살리기 위해 정부 역시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시행 중인 만성질환관리제 시범사업 등도 같은 맥락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뿐만 아니라 정 장관 지시 하에 진찰료 현실화도 추진 중이다. 개원가의 의존도가 높은 진찰료 인상을 통해 경영난 해소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판단이다.
다만 국민정서를 감안해 단순 인상이 아닌 질 관리에 기반한 조건부 인상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정 장관은 “일반 국민들은 의원급 의료기관의 어려움에 대한 체감도가 낮은 게 사실”이라며 “국민의 공감 속에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논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의원급 의료기관들의 질 관리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높다”며 “개원가에서도 국민건강에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고민해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건산업 발전 가능성 확인
보건의료산업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수출지표 등을 통해 ‘신성장동력’으로의 가능성을 확인한 만큼 국가적 차원에서 보건의료산업을 육성,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 2016년 국내 보건산업 수출액이 전년대비 19% 증가한 98억원을 기록했다. 세계적 경기 둔화로 전체 산업 수출이 8.5% 감소하고, 제조업 매출이 3.1% 줄어든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성적이다.
지난 3분기까지 제약, 의료기기, 화장품 등 보건산업 수출액은 전년동기 대비 20.3% 증가했고, 상장기업 136개소의 매출은 10.4% 늘었다.
정진엽 장관은 “임기 중 가장 큰 성과는 의료산업의 수출기반을 마련한 것”이라며 “미래 성장동력으로의 가능성을 입증한 만큼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따른 향후 양국의 보건의료산업 동향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견지했다. 무엇보다 양국 간 굳건한 협조를 다짐한 암정복 정밀의료가 걱정이다.
정 장관은 지난 9월 한·미·일 3국 보건장관 회의에서 미국 바이든 부통령과 정밀의료 공동연구 등에 공조체제를 가동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오바마 현 정부와의 다짐이었던 만큼 트럼프 정권에서의 영속성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진엽 장관은 “아직 차기 정부가 출범하지 않은 만큼 상황을 좀 봐야한다”며 “정밀의료는 양국이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분야인 만큼 차기 정부와도 잘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