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신청 항고심에서 정부 측 손을 들어 준 구회근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최근 대법관 후보 명단에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대법원은 21일 올해 말 퇴임 예정인 김상환 대법관의 뒤를 이을 후보 37명을 공개했는데 구 부장판사도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구 부장판사는 금년 4월 '2025학년도 의대 2000명 증원 처분 및 후속 처분에 대한 취소소송' 항고심을 맡으며 관심이 집중됐다.
당시 의료계는 의대증원 집행정지 신청 8건이 1심에서 줄줄이 각하가 결정되며 분위기가 침체됐던 때였다.
그러던 중 구 부장판사가 지난 4월 30일 항고심 심문에서 정부 측에 5월 10일까지 의대 증원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하면서 동시에 같은 달 중순까지 의대 정원을 승인하지 말라고 고지하면서 의료계 안팎으로는 의대증원 집행정지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항고심 재판부는 당시 심문에서 1심 재판부가 의대생 등의 원고 적격성을 인정하지 않은 데 대해 "만일 국가의 의대 정원 증원에 관해 원고 적격이 인정되는 사람이 전혀 없다면 이는 국가 행위에 대해 사법적 통제가 전혀 불가능하다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정부는 신청인들의 법률상 이익이 인정될 수 없다고 하는데 증원 규모가 10만명이 돼도 같은 입장인지, 즉 어떤 경우에도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인지 의견을 밝혀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후 정부 측은 법원에 의대 증원 관련 자료를 제출했으나, 이를 검토한 의료계는 "정부가 제출한 자료에는 기존 보고서 재탕 외에 재판부가 요청한 증원 결정에 대한 새로운 객관적인 용역이나 검증도 전무했다"며 자료 부실을 강력히 비판했다.
2025학년도 의대정원 확정 직전 기각…'대법관직 회유설' 의혹 제기
그러나 항고심 재판부는 판결에서 의대생들에 한해 원고 적격성을 인정하면서도 "집행정지 시 공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며 기각을 결정했다.
항고심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비록 일부 미비하거나 부적절한 상황이 엿보이기는 하지만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를 위해 일정 수준의 연구와 조사, 논의를 지속했다"며 "특히 향후 증원 규모 수정 가능성도 시사했다"며 정부의 증원 결정 과정에 대한 적절성을 인정했다.
또 "의대 증원 처분의 집행을 정지하는 것은 필수의료‧지역의료 회복 등을 위한 필수적 전제인 의대 증원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보인다"며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했다.
기각 결정을 받아 든 의료계는 1심과 달리 의대생들이 원고 적격성을 인정받은 것에 대해 의미를 두면서도 재판부가 부실한 제출 자료에도 의대 증원 정책을 인정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일각에서는 구 부장판사에 대해 '대법관 자리 회유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기각 결정 다음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구 부장판사에게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며 이 같은 분위기를 밝혔다.
임 회장은 "판사가 원래 전 공판에서 취했던 입장과 오히려 복지부에서 내놓은 근거가 더 형편없는데도 불구하고 정부 측 손을 들어준 것, 그리고 이 재판의 결과가 굉장히 늦게 발표된 점"을 지적하며 "제가 들은 근거로는 '상당히 여러 압력이 있었다'라고 들었다"고 했다.
이에 서울고등법원은 "임 회장의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 신뢰를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한편, 대법원은 이달 22일부터 내달 5일까지 구 부장판사를 포함한 37명 후보들에 대한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후보들에 대한 학력, 주요경력, 재산 등 정보를 누구나 확인하고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
수렴된 의견을 바탕으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제정 인원 3배수 이상 후보자를 추천하고 조희대 대법원장은 이 중 3명을 선정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제청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