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 바이오, 의료기기 등 헬스케어 기업들이 기업공개(IPO)를 자진 철회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소위 '뻥튀기 공모가' 논란을 일으킨 '파두 사태' 이후 까다로워진 거래소 심사 절차가 복병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피노바이오가 코스닥 상장을 자진 철회했다. 작년 5월 예심 청구 후 9개월 만이다. 피노바이오는 파두 사태 등 대내외 변수로 계속해서 심사가 지연된데 따른 결정이라고 밝혔다.
2017년 설립된 피노바이오는 항체-약물 접합체(Antibody-Drug Conjugate, ADC) 플랫폼 전문 기업이다.
ADC는 유도미사일처럼 항암제가 암세포만 타깃해 사멸시킬 수 있도록 만든 치료제다. 항체, 링커, 페이로드(약물)로 구성되며 암세포에 특이적으로 결합하는 항체에 강력한 효능을 가진 약물을 결합한 형태로 투여된다.
피노바이오는 지난해 1월 한국거래소가 지정한 전문 평가기관에서 각각 A, BBB 등급을 받으며 기술성 평가를 통과하고 증시 입성을 추진했다.
하지만 한국거래소에 상장 예심을 청구한 지 9개월만에 계획을 철회했다.
피노바이오 관계자는 "거시경제 불확실성과 금리인상 여파로 주식시장 전반적으로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회사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기 어려운 상황이라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무리하게 상장을 추진하는 대신 시장 상황을 지켜보며 최적의 시점에 다시 도전하는 것이 적절하다 판단해 철회를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피노바이오에 앞서 코루파마도 최근 갑작스럽게 상장을 자진 철회했다. 2016년 설립된 코루파마는 필러와 같은 노화 방지와 관련된 에스테틱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코루파마는 지난해 8월 한국거래소에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했지만 심사가 길어지며 결국 완주하는데 실패했다.
코루파마 상장 철회는 경영진 상장차익 증여의제가 요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증여의제는 법률상 증여는 아니지만 증여와 같은 경제적 효과가 발생하는 거래나 사건 따위를 증여로 취급해 세금을 부과하는 일을 말한다.
코루파마는 당초 계획대로 상장을 추진할 경우 최대주주 등에 과도한 증여세가 부과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해석이다.
증여세 납부를 위해 구주매출 등으로 보유지분을 처분할 경우 기업가치 제고에 불리한 공모구조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상장 철회는 까다로워진 거래소 심사도 주된 원인이다. 특히 공모가 부풀리기 논란을 일으킨 '파두 사태'로 거래소에서 미래 추정이익에 대해 신중한 시각을 지속하고 있다.
파두 사태는 반도체 기업 파두가 지난해 연매출 1200억원을 제시하고 상장했지만 반년간(2~3분기) 매출이 4억원에 그쳐 논란이 된 사건을 말한다.
파두는 IPO 과정에서 투자 위험 요소를 제대로 고지하지 않아 비판을 사고 있다. 투자자들 역시 파두 상장으로 손실을 봤다며 집단 소송을 추진 중이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제2 파두 사태' 방지를 위해 IPO 기업들이 가장 최신 버전의 매출액과 영업손익을 증권신고서에 기재하도록 기재요령을 보완했다.
한번 제출했어도 효력발생일이 익월로 넘어가면 직전월의 실적까지 추가 기재해야 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이 같은 여파는 기업들의 상장 계획에도 복병으로 작용하고 있다.
헬스케어 기업 중에서는 옵토레인과 하이센스바이오가 대표적이다. 두 기업은 모두 기술성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기술특례상장에 도전했으나 결국 자진 철회를 결정했다.
2012년 설립된 옵토레인은 시스템 반도체 기술과 바이오 기술을 융합해 차세대 진단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옵토레인은 디지털 분자진단(PCR) 기업으로 지난해 3월 진행한 기술성 평가에서 평가기관 두 곳으로부터 모두 A 등급을 획득했다.
하지만 거래소에서 부정적 의견을 전달받으면서 자진 철회를 선택한 것으로 파악된다.
같은 시기 하이센스바이오도 상장을 자진 철회했다. 하이센스바이오는 생리적 상아질 재생 기술과 치주인대 재생 기술을 기반으로 치과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는 기업이다.
회사는 지난해 5월 기술보증기금과 한국기술신용평가로부터 각각 A, BBB 등급을 받고 7월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했지만, 약 6개월 만에 상장을 철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