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고위험군 산모의 분만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제왕절개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태아를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에게 법원이 유죄를 선고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인천지법 형사7단독 황성민 판사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인천 某 50대 산부인과 의사 A씨에게 벌금 2000만원을 최근 선고했다.
앞서 A씨는 인천 한 산부인과에서 산모 B씨의 분만을 돕던 중 태아 심장박동수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제대로 조치하지 않아 태아를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앞서 산모 B씨는 사건 전날, 양수가 흐르는 상태로 이 사건 산부인과를 찾고 고위험군 산모로 분류됐다. 의료진은 유도분만을 촉진하는 ‘옥시토신’을 투여했다.
옥시토신을 맞은 산모의 경우 의료진이 자궁 과다수축이나 태아 심박동 변화 등을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 태아의 심박동 수가 떨어지는 응급 상황이 생기면 산모에게 산소를 공급하거나 응급 제왕절개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당직 의사로 근무한 A씨는 사건 발생 당일 오전 1시 30분부터는 B씨 자궁수축 빈도와 압력을 측정하지 않았다.
A씨는 사건 당일 오전 5시께 간호조무사로부터 "아기가 잘 안 내려오고 산모가 너무 힘들어해 지쳤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분만 2기' 시점으로부터 2시간이 지나지 않았다"며 분만실에 가지 않았고, 대신 간호조무사에게 "30분 동안 힘주기를 더 하면서 지켜보라"고 지시했다.
A씨가 30분 뒤 분만실에 갔을 땐 전자 태아 감시장치 모니터에 나타난 태아 심박동 수가 이미 크게 떨어져 '태아곤란증'이 의심되는 상태였는데도 그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어 A씨는 오전 6시 5분께 간호조무사로부터 "태아 심박동이 없다"는 긴급호출을 받고 분만실에 다시 갔고 '흡입분만'으로 태아를 자궁 밖으로 꺼내 심폐소생술을 했으나 살리지 못했다.
법원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감정 결과를 토대로 결과적으로 태아 이상 상태가 확인된 시점에 제왕절개 등 적절한 조치를 했다면 사망은 막을 수 있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황 판사는 "당직 의사인 피고인은 주의를 기울여 산모와 태아의 상태를 관찰하거나 여의치 않을 경우 간호사 등 다른 의료진에게 구체적으로 관찰을 지시했어야 했다"며 "필요한 조치를 소홀히 한 업무상과실 뿐 아니라 그 과실과 피해자 사망 사이에 인과 관계도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자가 사망하는 중한 결과가 발생했고 피해자의 유족이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주치의가 아닌 당직 의사였던 A씨가 처음부터 끝까지 산모와 태아 경과를 면밀히 관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 밖에 황 판사는 "태아 상태를 제대로 확인해 피고인에게 보고하지 않은 다른 의료진의 잘못이나 분만 과정에서 해당 병원의 진단방식에 문제가 있어 보이는 점 등은 고려했다"고 판시했다.
한편, 앞서 2017년에도 인천에서 분만 중 독일인 산모의 태아를 숨지게 한 혐의(업무상과실치사)로 40대 의사가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금고 8개월을 선고받았으나 이듬해 열린 항소심이 무죄로 뒤집힌 사건이 있었다.
해당 판결이 알려지면서 대한의사협회는 산부인과 의사라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사건의 책임을 의사에게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며 서울역에서 의사 1천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전국 산부인과 의사 긴급 궐기대회'를 열기도 했다.
이후 항소심 재판부는 의사의 과실은 인정하면서도 태아 사망과 그 과실이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확신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