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환자 본인이 아닌 간호사 등에게 처방전을 대리처방 했다는 이유로 노인의료시설 촉탁의에게 내린 업무정지처분은 부당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장기간 동일한 처방이 필요한 재진환자들이 대상이었기 이같은 처분을 내릴 만큼 큰 잘못은 아니란 판결이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12부(재판장 홍순욱)는 충남 지역에서 의원을 운영하는 의사 A씨가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낸 업무정지처분 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손을 들어줬다.
2015년 A씨는 지역 노인의료복지소설과 촉탁의·협력의료기관 협약을 체결하고 각 시설에 방문해 입소 환자들을 진찰했다.
초진환자들을 대상으론 직접 처방전을 발급했지만, 재진환자들은 직접 진찰하지 않고 노인의료복지시설에 근무하는 간호사 등을 통해 처방전을 발급했다.
보건복지부는 2018년에 현지조사 과정에서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A씨가 관련법을 위반했다며 이듬해 50일간의 업무정지 처분을 내렸다.
구 의료법 17조 1항은 직접 진찰하거나 검안한 의사가 아니면 진단서·검안서·증명서 또는 처방전을 교부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복지부가 처분을 내리기 직전 의료법이 개정되면서 처방전 대리수령이 가능해졌다.
개정된 의료법은 '동일 상병에 대해 장기간 동일한 처방이 이뤄지는 경우로서 의사가 해당 환자 및 의약품에 대한 안정성을 인정하는 경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대리수령자에게 처방전을 교부할 수 있게 했다.
A씨는 이같은 법개정 사실을 들며 처분이 부당하다고 호소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가 요양급여를 청구한 당시의 의료법과 고시를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복지부 처분이 재량권을 일탈·남용했다는 A씨 측 주장은 받아들였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행정기관은 강압적인 행정처분을 하기 전에 해당 처분을 통해 달성되는 공익적 목표와 개인이 입게 될 불이익, 문제행위의 공익침해 정도 등을 객관적으로 따져야 한다.
재판부는 이사건의 경우 A씨의 행위의 공익침해 정도가 심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개정된 의료법이 노인의료복지시설 직원이 처방전을 대리 수령한 경우에도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A씨 부당청구행위는 국민건강보험 체계를 뒤흔드는 행위로까지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 "수진자들은 A씨가 직접 진찰했던 환자들로 장기간 동일한 처방이 이뤄졌다"며 사회적 비난 가능성도 낮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한 "이번 사건에서 청구된 요양급여비용 액수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건강보험 재정건전성을 감안해도 이 사건 처분으로 달성하려는 공익이 A씨가 입게 되는 불이익보다 현저히 큰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복지부 처분 취소 판결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