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신지호 기자] 코로나19 백신을 두고 세계 각국이 물량 부족을 호소하고 있는 가운데 유럽에서는 국가 간 신경전까지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미국은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나서 "코로나19 백신이 남아돌 정도로 확보하겠다"고 공연하면서 백신 쟁탈전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선구매 계약을 체결하지 못했거나, 구매 여력이 없는 국가들은 계속해서 후순위로 밀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의 경우 아스트라제네카는 전량 국내 생산을 하는 것으로 확정됐지만 화이자를 비롯해 얀센, 모더나 백신 공급에는 영향을 받을 수도 있을 전망이어서 사전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지난 28일(현지 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연합(EU) 주요 국가들에서 갑작스러운 백신 부족으로 일제히 접종이 중단되거나 지체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변이 바이러스가 유럽 전역에서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백신 제조사들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코로나 상황은 더 악화하고 있다.
이에 EU가 영국을 포함한 EU 외부로의 수출을 금지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갈등이 비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FT에 따르면 프랑스 방역당국은 전체 인구의 3분에 1을 차지하는 파리를 비롯한 두 개 도시에서 화이자 백신 접종을 4주간 미뤘다.
이미 1차 접종을 완료한 사람은 2차 접종을 받을 수 있으나, 새로운 1차 접종을 언제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신원을 밝히지 않은 소식통은 "백신 공급이 빡빡하게 이뤄지는데 2차 접종 물량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 보건부 측은 모더나 백신 역시 내달 들여올 물량이 계획보다 25%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면서 백신 공급이 당초 예상보다 느려질 것으로 예상했다.
포르투갈 역시 기대치보다 못한 백신 수급으로 접종 속도가 계속 느려지고 있으며, 독일 역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65세 이상 고령층 효과 논란으로 접종을 중단하면서 보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FT는 분석했다.
스페인 정부 역시 지난 27일 백신 부족으로 수도 마드리드에서의 접종을 당분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백신 확보를 두고 영국과 EU 신경전도 부각되고 있다. EU는 아스트라제네카가 계획된 백신 공급량의 40%에도 미치지 못하는 3100만회분을 공급한다고 통보하자 영국 몫으로 생산되는 백신 일부를 EU에 넘겨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스트라제네카는 EU 요구를 거부했다. 작년 1월 EU를 공식 탈퇴한 영국은 EU보다 3개월 앞서 아스트라제네카와 계약했기 때문이다.
이에 EU는 아스트라제네카에 대한 보복을 예고하는 등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아스트라제네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독일은 "아스트라제네카가 EU 밖으로 백신을 수출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EU와 체결한 계약대로 백신 공급 전까지는 영국을 포함한 EU 이외 국가에 백신을 공급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만 이 같은 수출금지령이 현실화될 경우 EU가 자유무역 원칙을 정면으로 제한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미국, 백신 선구매 전략 강화...후순위 국가 차질 불가피
이가운데 한동안 백신 부족에 시달리던 미국의 경우 빠른 속도로 백신 접종을 늘릴뿐 아니라 선구매를 통해 '쓸어담기'에 나서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이후 100일 동안 하루 100만 회씩 접종해 1억 회 접종을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는데, 1월 29일 현재 기준으로 미국의 일일 백십 접종은 100만회를 이미 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다시 일일 접종 목표치를 150만회로 상향했다.
바이든 정부는 화이자, 모더나 등으로부터 2억회에 달하는 백신을 추가 구매하기도 했다.
앞서 미국은 두 회사로부터 4억회를 받기로 돼 있었는데, 여기에 2억회를 추가해 6억회 분량의 백신을 확보하게 됐다. 이는 미국 인구인 3억2000만명이 2회씩 접종 받을 수 있는 양이다.
바이든 정부는 올 봄부터 접종을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백신을 접종해 여름 내에 전 국민 접종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미국이 다국적 제약사로부터 백신을 쓸어담고 있는 가운데 EU와 영국마저 백신을 두고 쟁탈전을 벌이기 시작하면서 이미 후순위로 밀린 국가들의 경우 당초 예정보다 백신 보급이 더 늦춰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