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재확산되면서 정부는 민간병원을 상대로 병상과 간호인력 협조를 요청하고 나섰다.
하지만 중소병원들은 현 사태의 심각성에 공감하면서도 가뜩이나 부족한 인력과 시설을 당장 내주는 데는 난색을 표했다.
14일 병원계에 따르면 보건당국은 최근 각 민간병원들에 공문을 보내 간호인력과 코로나19 환자를 수용하기 위한 병상을 제공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실제 병상과 인력을 제공하겠다고 나서는 의료기관은 극히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에서 100병상 규모의 A병원 원장은 “정부가 협조 요청을 했지만 주변에 나서겠다는 움직임을 보이는 병원은 없다”며 “의료기관들이 신경을 기울여야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3일 코로나19 확진자가 1000명을 넘어서자 ‘긴급 의료대응 계획’을 발표하고 부족한 병상과 의료인력 중 일부를 민간병원에서 보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감염병 전담병원은 기존 440병상의 여유 병상에 2400여 병상을 확충하고 중환자 치료 병상도 현재 사용 가능한 여유 병상 13병상에 287병상을 추가한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정부 요청에 빅5 병원 등 서울 소재 주요 대형병원들이 중증환자 병상 추가를 검토 중이지만, 이마저도 기관 당 1~2개 병상 지원이 가능한 정도다.
지역거점 중소병원들의 적극적인 협조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일선 병원들은 쉽지 나서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코로나19 환자를 수용할만한 시설과 인력을 갖춘 병원들은 대부분 각 지역에서 2차의료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 섣불리 전담병원으로 전환하면 지역의료에 또 다른 의료공백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인천지역 B중소병원 원장은 “상급종합병원 전단계에서 지역민 의료를 책임지는 2차 병원은 평소에도 인력과 시설이 많이 부족하다”며 “대형병원 인프라에서도 협조가 쉽지 않은데 규모가 작은 병원은 더욱 어렵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전담병원 전환 큰 부담이고 정부 손실보상 약속도 믿기 어려워"
특히 중소병원의 경우 병상을 내주기 위해서는 병원 전체를 전담병원으로 돌려야 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대형병원은 출입구 동선이나 병동 구획을 나눠 확진환자와 일반환자를 확실히 분리할 수 있지만, 중소병원의 경우 대형병원처럼 격리공간을 만드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결국 병원 전체를 내놓아야 할텐데, 보상이 이뤄진다 해도 적잖은 손실을 피할 수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말햇다.
정부 보상이 충분해도 협조는 어려울 것이란 의견도 있다.
지역거점 병원은 특성상 지역민들의 인식이 중요하다. 한 번 감염병 전담시설로 전환하면 방역조치를 철저히 해도 당분간 환자들이 기피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이들의 얘기다.
서울 소재 C병원 관계자는 “메르스 사태 당시 확진자가 다녀갔다는 이유만으로 문을 닫은 중소병원이 한둘이 아니었다”며 “자발적인 치료시설로 운영한다는 차이점이 있어도 내원객들이 불안감을 떨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현재 임시병상 설치 공사를 하고 있는 서울의료원은 주변 지역민들로부터 민원을 받기도 했다. 주변에 어린이집과 같은 아동용 시설이 있는데 감염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대구지역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운영됐던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또한 일반진료로 전환할 당시 내원환자수가 곧바로 회복되진 않았다.
C병원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중소병원은 확진자가 내원하는 사태에 더 많은 신경을 기울여야 했다”며 “지역 의료시설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병원과 의료진은 지금도 지쳐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시민단체 등 "민간병원 활용하면 위기 극복 가능", 강제 동원 주장도 제기
한편, 수도권 병상 부족이 현실화 되면서 정부 뿐만 아니라 시민단체도 민간병원 협조를 촉구하고 나섰다.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민주평등사회를위한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 등 단체들은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민간병원을 활용한다면 병상 위기는 심각한 수준이 아닐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사시 정부가 법적 근거에 의거해 '강제적 동원'을 명령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단체들은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민간병원이 병상을 내놓도록 긴급명령을 내리고, 민간병원은 병상·인력을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민간병원은 비영리 기관으로서 혜택이 크고, 수입 대부분은 건강보험료에서 나온다"며 “병상 여력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멈추고, 비(非)응급 환자 치료를 잠시 미뤄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