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민식 기자] 보건복지부가 지난 9월 공개한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이 오히려 연구자와 기관의 부담을 늘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4일 열린 ‘데이터 3법과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 쟁점 및 과제’ 세미나에 참석한 각계 전문가들은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의 미비점들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은 데이터3법 시행 후속조치 일환으로 보건의료분야 가명정보의 안전한 활용이 가능토록 개인정보처리자가 참고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기 위해 마련됐다.
개정된 개인정보보호법만으로는 모호했던 부분들이 명확해졌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반응들이 있지만 첫 번째 가이드라인이다보니 현장에서는 여전히 혼란스럽다는 반응들도 많다.
세미나에 참석한 의료계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우려를 표한 부분은 CDW(임상데이터 저장 창고, Clinical Data Warehouse) 데이터를 활용해 연구 계획을 세우던 기존 패턴이 이번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통상 대형병원들은 환자의 데이터를 가명처리해 수집하는 CDW를 운영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이렇게 가명처리 된 정보들을 조회하면서 연구 소재를 찾아왔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가명정보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연구목적이 구체화돼 있어야 한다. 축적된 가명정보 속에서 연구 주제를 찾던 기존 방식이 부적절해 지는 것이다.
삼성서울병원 건강센터 양광모 교수는 “연구목적이 구체화 돼 있지 않으면 데이터베이스 운용을 EMR과 같은 기준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돼 있는데, 이럴 경우 다른 과나 담당 환자가 아닌 다른 환자의 정보엔 접근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연구 계획이 세워지기 전에는 가명정보를 접근하지 말라는 것으로 지금까지 잘하고 있던 것을 오히려 퇴보시키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강준 복지부 보건의료데이터진흥과 과장은 “후향적 연구에서 과거에 쌓인 가명정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연구자들이 심각하게 볼 수 있다”며 “가이드라인과 개인정보보호법 취지를 거스르지 않는 한도 내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고민하겠다”고 답했다.
소규모 기관은 데이터심의위원회 구성 힘든 실정…政 "공용심의委 등 방안 모색"
기관들 입장에서는 데이터심의위원회 구성이 적잖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가이드라인에서는 가명정보의 기관 내 활용, 기관 외 제공, 결합신청, 가명처리 적정성 검토 등을 실시할 수 있도록 5인 이상 15인 이하로 데이터 심의위원회룰 설치‧운영토록 하고 있다.
문제는 심의위원회 구성 요건을 소규모 기관들이 충족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 위원회 구성은 해당 기관에 소속되지 않은 위원이 과반수를 차지해야 하며 ▲정보주체를 대변하는 자 1인 이상(환자, 앱 사용자 등) ▲의료분야 데이터 활용 전문가 1인 이상 ▲정보보호 또는 법률 분야 전문가 1인 이상이 포함돼야 한다.
김앤장 법률사무소 이인환 변호사는 “외부인 과반수로 위원회를 운영하기는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 정도의 위원회를 구성하려면 기관 자체가 어느 정도 규모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데이터심의위원회 문제에 대해서는 위원회 구성‧운영 매뉴얼 공유와 공용데이터심의위 운영과 같은 보다 구체적인 답변을 내놨다.
복지부 강준 과장은 “시행 초기인 만큼 현행 가이드라인대로 끌고 갈 수밖에 없다”면서도 “위원회 구성과 운영 방식에 대한 매뉴얼이나 사례를 공유해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소규모 기관들은 위원회 구성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연구용역이 진행 중”이라며 “공용데이터심의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구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