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료기관, 즉 일반 기업도 소비자(의뢰대상자)를 상대로 직접 유전자검사를 시행할 수 있는 DTC(Direct To Consumer) 서비스를 허용한 정부에 대해 일선 의사들이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냈다.
유전자검사에 관한 요건을 완화하는 ‘생명윤리법’ 개정안이 의료산업화 성격을 띌 수 밖에 없을 뿐 아니라 의료법 취지와도 상충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24일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에서 열린 대한유전학회 제53차 추계학술대회는 DTC 서비스 관련 규제를 완화한 정부에 대한 성토의 장이 됐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6월30일 일부 항목에 한해 의료기관을 거치지 않고도 누구나 직접 유전자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시행했다.
그동안 비의료기관(기업)은 의료기관으로부터 의뢰를 받은 경우에만 유전자검사를 할 수 있었지만 법 개정에 따라 기업이 직접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다만 검사범위는 제한적이다. 기업은 혈당, 혈압, 피부노화, 체질량지수 등 12개 검사항목과 관련된 46개 유전자만 직접 검사할 수 있다.
참고로 유전자 검사기관은 11월20일 기준 의료기관 91개, 비의료기관 94개로 총 185개다. 또 비의료기관 가운데 직접 유전자검사 시행(DTC) 신고기관은 21개로 22.3% 수준이다.
복지부 “규제 완화 차원” vs 의사들 “산업발전 명분”
보건복지부 황의수 생명윤리정책과장은 법 개정 추진배경에 대해 “유전자 검사를 의료기관 의뢰를 받은 경우에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는 건의에 따라 유전자검사기관이 직접 유전자검사를 실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의 이 같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유전의학자를 비롯한 일선 의사들은 법 개정 취지를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립암센터 장윤정 국제암대학원 암관리정책학과 부교수는 “DTC 서비스가 확대되면 과잉진단이나 과잉치료로 이어질 수 있어 소비자 부담은 더욱 커질 수 있다”며 “특히 의학적 효과에 대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검사기관이나 관련산업이 수익구조 개선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히 우려된다”고 전했다.
이어 “DTC 서비스에 대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완비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라며 “검사 오류에 대한 조치나 대처를 비롯해 ▲광고에 대한 심사 및 제제 ▲유전자검사 기계나 기관에 대한 정도관리 ▲결과통보방식에 대한 권고안 부재 ▲유전자검사 동의서 취득 문제 ▲2차적 활용에 대한 개인정보 문제 등 풀어야할 숙제가 산적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플로어에서도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 여론이 쏟아졌다.
한 참석자는 “DTC 서비스의 정확성이나 유용성 등이 확보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같은 유전자일지라도 검사방식에 따라 결과값이 다를 수 있다”며 “검사 정확성을 확인하기 위해 하나의 유전자를 대상으로 전체 유전자검사기관에서 결과값을 도출, 그 결과를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 없이 법 개정에 이르렀다는 점 자체부터 의료산업화 명분으로 추진됐다는 의심의 소지가 있다”며 “당장 한 약국에서 DTC 서비스를 중개하며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하는 등 벌써부터 의료산업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 다수의 기업들이 건기식이나 화장품을 팔려고 득달같이 달려들 것”이라고 피력했다.
다른 참석자 역시 “생명윤리법 개정안은 의료법과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 특히 환자 개인정보 유출도 분명히 문제가 될 것으로 본다. 이번 개정안은 불법이다”라고 역설했다.
이밖에 국가가 공인한 유전자상담사가 없기 때문에 상담의 질이 떨어질 밖에 없을 뿐 아니라 이러한 유전자상담사 부재로 인해 해당 역할을 의사가 수행함에 따라 의료자원이 낭비될 수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에 대해 복지부 황의수 과장은 “이번 법 개정은 유전자검사 규제 완화에 있어 가장 약한 수준으로 첫 발걸음을 내딛을 것 뿐”이라며 “앞으로 논의를 통해 합리적인 개선방안을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