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한 종합병원에서 2급 법정감염병인 카바페넴내성장내세균속균종(CRE) 감염이 무더기로 발생해 보건당국이 역학조사에 나섰다.
지난해 정부가 CRE 감염을 막기 위한 종합대책을 내놓았으나 감염 증가 추세는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제주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8일 도내 A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받은 1명이 CRE에 감염된 것을 시작으로 같은 병실에서 총 23명의 환자가 CRE 양성 판정을 받았다.
CRE는 카바페넴계 항생제에 내성을 나타내는 장내세균이다. 주로 요로감염을 일으키며 위장관염, 폐렴 및 패혈증 등 다양한 감염증을 유발한다.
카바페넴계 항생제뿐만 아니라 여러 계열 항생제에 내성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아 감염 시 치료도 어렵다.
다만 CRE 양성 판정을 받더라도, 대부분은 단순 보균상태라 치료가 필요하지는 않다. CRE로 인해 감염증이 나타나는 경우에 한해 항생제로 치료한다.
제주 감염 환자 중 아직 위중증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23명 중 10명이 CRE 한 종류인 ‘카바페넴 분해효소 생성 장내세균(CPE)’에 감염돼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CRE는 항생제에 내성을 일으키는 메커니즘에 따라 CPE와 ‘카바페넴 분해효소 미생성 장내세균(non-CPE)’으로 나뉜다.
이 중 CPE는 항생제를 직접 분해할 수 있는 효소를 생성하고, 다른 균주에도 내성을 전달해 non-CPE 감염보다 사망률이 4배나 더 높다는 보고도 있다.
제주도 관계자는 “CRE는 환자 체내에서도 생성될 수 있는 세균이기 때문에 정확한 최초 발생경위는 알기 어려워 추가 확산을 막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감염환자들을 격리하고 의료기기 소독과 위생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감염 종합대책 마련했지만 CRE 감염 증가세
국내 주요 의료관련감염 발생률은 전반적으로 감소 추세다. 그러나 CRE 감염증은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18년에 CRE 감염은 1만1954건이었으나 2022년 3만522건으로 지속 증가했다. 이로 인한 사망도 지난 2018년 141건에서 2022년 527건으로 늘어났다.
제주에서도 CRE 환자가 2명을 초과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4월 ‘제2차 의료관련감염 예방관리 종합대책(2023~2027)’을 발표하고 CRE를 비롯한 의료관련감염 발생을 줄이겠다고 나섰다.
의료관련감염은 의료시설에서 외래 또는 입원 중 발생하는 감염이다. CRE는 CRE 감염증 환자 또는 병원체 보유자와 접촉하거나 오염된 기구, 물품, 시설 벽면 등을 통해 옮겨진다.
특히 인공호흡장치 및 중심정맥관, 도뇨관을 사용하고 있거나, 외과적 상처가 있는 중환자는 감염위험이 높다.
정부는 종합대책으로 4개 추진 전략, 12개 중점과제를 마련하고 2027년까지 CRE 환자수를 2022년 대비 20% 감소시키는 목표를 세웠다.
여기에는 지난 2007년 CRE 감염증 감소전략을 세우면서 CRE 발생률을 50% 감소시킨 이스라엘의 사례를 참고해 CRE 감염증 감소전략 모델을 구축하고 시범 운영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그러나 종합대책 발표에도 CRE 감염은 꾸준히 발생, 지난해 11월까지만 발생 건수가 3만3000건을 넘어 증가 추세다.
특히 고령층이 감염에 매우 취약해 우려가 가중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충북보건환경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도내 의뢰된 CRE 검사 288건 중 70세 이상 고령 인구가 209건(72.6%)를 차지했다. 그중 양성 건수도 200건으로 95.7%의 양성률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