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양보혜 기자] 수년간 경영난에 허덕이던 국내 1호 여성전문병원 제일병원이 휴원에 들어가면서 회생이 가능할지에 대해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6일 의료계에 따르면 연예인, 정·재계 인사들이 찾을 만큼 명성이 자자했던 제일병원이 더 이상 경영난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지난 2000년까지 전국 분만 실적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켰던 제일병원에 그동안 무슨 일이 생겼던 것일까.
제일병원 창립자인 고(故) 이동희 이사장은 고(故)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의 조카였고, 이병철 이사장 뜻에 따라 제일병원은 2005년 11월 이전까지 삼성그룹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2005년 11월 삼성그룹에서 분리돼 '삼성제일병원'에서 '제일병원'으로 병원명을 변경했다. 이사장도 이동희 이사장의 장남인 이재곤 현 이사장으로 교체됐다.
삼성그룹에서 분리된 후 제일병원의 경영 사정은 나날이 나빠졌다. 이재곤 이사장의 무리한 투자 때문에 부채가 급격히 늘어 부실규모가 커졌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제일병원 노조가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병원 부채는 327억원에서 1280억원으로 무려 4배나 증가했다. 금융 대출도 53억원에서 950억원으로 18배 늘어났다. 이에 따른 이자 비용도 10년간 10배 증가했으며, 당기순이익도 6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이재곤 이사장은 지난 2007년부터 낙후된 병원 건물을 전체적으로 리모델링하면서 건강검진센터, 여성암센터, 임상연구소 등도 설립했다. 이 과정에서 부지 확보를 위한 과도한 부동산 차입 비용이 생겼다.
외형을 키우고 분만 위주의 진료시스템에서 연구중심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경영진 판단은 옳았지만 방법이 문제였다.
부채가 늘자 이사장 측은 경영난 극복을 위해 외부에 컨설팅을 의뢰했고, 그 결과 인건비 및 부대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경영진은 곧바로 의료진 등에 대한 임금삭감을 추진했다. 병원 노조 측은 처음에는 경영 정상화에 대한 필요성을 인정해 수용했으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악화됐다.
임금 삭감에 의료진은 점점 병원을 떠났고, 남은 간호사들과 직원들은 낮은 임금에도 퇴사한 직원들의 업무까지 대신 맡으며 과도한 업무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참다 못한 노조는 2018년 6월 총파업에 돌입했다. 이와 함께 노조는 이재곤 이사장을 배임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기에 이재곤 이사장은 지난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병원 증·개축 공사비 1000억원을 대출받아 이 중 수백억원 상당을 가로챈 의혹을 받았다.
병원 측과 노조는 이재곤 이사장이 자리에서 물러날 것과 함께 새로운 인수자 물색, 체불 임금 지급 등에 합의하며 파업을 풀었지만 이미 제일병원은 '골든타임'을 놓쳐 절반 이상 침몰이 진행됐다.
난항 병원 매각, 구원투수 '이영애 컨소시엄' 행보 주목
복잡한 내부 사정과 상당한 규모의 부채로 인해 매각도 쉽지 않았다. 동국대 등 다양한 인수 의향자들과 협상을 진행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특히 지난해 12월에 매각의향 MOU까지 체결했던 인수자가 계약 내용을 이행하지 않으면서 마지막 기대마저 물거품이 됐다.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경영진은 입원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전원하고, 진료·검사 등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입원 진료에 이어 외래 진료까지 멈추면서 병원은 12월 말부터 잠정적 휴원에 들어간 것이다.
이대로라면 향후 법정관리 수순을 밟게 된다.
하지만 새해 한가닥 희망이 생겼다. 지난 2011년 이곳에서 쌍둥이 자녀를 분만한 배우 이영애 씨가 제일병원 인수 컨소시엄에 참여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제일병원 법정관리 여부는 1월 중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의료법인은 외부 투자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병원 이사회 구성권을 인수자에게 넘기는 방식으로 매각이 이뤄지게 된다.
구원투수로 등장한 배우 이영애씨 등 컨소시엄의 병원 살리기 노력이 실제 재도약 기회로 이어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