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양보혜 기자] 경영난으로 폐원 위기에 놓인 국내 첫 여성전문병원인 제일병원이 태풍전야처럼 고요했다. 진단서를 떼거나 응급실을 찾는 환자가 왕왕 보이기는 했으나 대체로 한산한 모습이었다.
8일 서울 중구 묵정동에 위치한 제일병원에는 의료진, 행정직원 등 200명 정도가 근무를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 휴원을 결정한 뒤로 평일 주간 진료와 응급실 운영만 부분적으로 하고 있다.
이에 입원병동은 환자 발길이 뚝 끊겼고, 외래병동은 예전에 비해 조용했다. 단, 수납창구는 진단서 및 각종 서류를 떼러 온 환자들로 조금 붐볐다.
의료진도 일부는 떠났지만 잔류를 결정한 이들도 있다. 부인암 명의로 알려진 김태진 산부인과 교수는 제일병원을 떠나 올해 1월부터 건국대병원에서 진료를 시작했다.
한정열 교수도 이직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기헌·임경택 산부인과 교수 등은 당분간 병원에 머물기로 결정했다는 전언이다.
제일병원 관계자는 "정규직 직원 450명 중 200명 정도가 남아서 병원이 회생되길 기다리며 맡은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며 "임금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제일병원은 연간 1000~1200억원 정도 수입을 내왔다"며 "체불임금 및 인건비 지급과 병원 운영에 필수적인 치료재료 등에 관한 비용을 지불해 병원 진료가 정상적으로 가동되면 재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병원을 어떻게 소생시키느냐는 것이다. 최근에는 배우 이영애씨가 포함된 컨소시엄이 만들어져 인수 논의가 급물살을 탈 수 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하지만 인수 의향만으로 상황을 낙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게다가 국내 의료법인은 의료법에 따라 외부 투자를 받거나 인수합병을 할 수 없어 병원 운영권(이사회 구성권)을 넘기는 방식으로 매각해야 한다.
이에 따라 인수한 병원 자산을 현금화하기도 어렵고, 여러 해 쌓인 수천억원의 채무를 떠안으면서 병원 경영 정상화에 뛰어들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또 다른 직원은 "새해 첫 날 이영애씨 인수 컨소시엄 참여 뉴스를 보고 너무 놀랐다. 하지만 병원을 살리고 싶다는 의향만 밝힌 것으로 보인다. 차후 행동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인수 의향자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으면 제일병원은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하는 수순을 밟게 된다. 실제 이 논의를 위한 협의체는 이미 만들어졌다.
다음주 노조 대표 2인 및 의사회 대표 1인, 병원장 등 4인이 모여 처음으로 회생절차에 관한 내부 회의를 갖는다.
이 자리에선 법원이 회생절차 신청을 받아들일 경우 제3자 관리인 지정과 이 기간 동안 근로자 처우를 어떻게 할지 등이 주요 안건으로 다뤄질 예정이다.
병원 관계자는 "법원이 청산하라고 하면 문을 닫겠지만, 회생절차 신청을 받아들이면 제3자 관리인 선임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며 "향후 벌어질 상황과 직원들의 처우에 관한 협의를 위한 첫 회의가 다음 주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