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힘든 중소병원 생존전략 '新 패러다임'
기존 시도된 적 없는 경영기법 활용…성공여부 관심 고조
2013.07.15 12:33 댓글쓰기

‘호시절’은 까마득한 옛날 얘기가 된지 오래다. 이제 말 그대로 ‘생존’이다. 2010년 경영부진을 이유로 18곳이 휴업했고, 257개 병원은 폐업했다. 경영난을 못이겨 문을 닫은 병원은 2005년 143개, 2006년 152개, 2009년 181개 등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특히 폐업병원은 2012년 100병상 미만이 57.2%를 차지했고 100~299병상은 36.6%를 기록해 중소병원이 대다수를 기록했다. 뚜렷한 해결책 없이 갈수록 상황만 악화되던 중소병원계에 조만간 혁신의 바람이 불 조짐이다. 기존에 전혀 시도된적 없는, 그럼에도 국내 병원계 패러다임 변화를 주도할 것으로 평가받는 묘책. 이미 태동기를 넘어 세상 빛을 볼 날이 임박했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경기도 김포에 위치한 뉴고려병원. 250병상 규모의 이 병원은 오는 7월 심혈관센터 오픈을 앞두고 있다. 지역 거점병원으로서 지역민들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그렇다고 각종 센터가 범람하는 요즘 병원계 추세에 편승하는 정도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 센터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뉴고려병원과 무관하다. 즉, 운영주체가 다르다는 얘기다.


뉴고려병원에 문을 여는 심혈관센터 운영주체는 바로 심장질환 메카인 세종병원이다.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를 앞세워 심혈관센터 세팅부터 운영까지 모두 세종병원에서 담당한다.


어떻게 이런 조합이 가능할까? 그 궁금증의 시발이 바로 중소병원계에 불고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 열쇠다.
이들 두 병원 모두 국가로부터 특정 질환의 전문성을 인정받은 전문병원이다. 뉴고려병원은 ‘관절’, 세종병원은 ‘심장’ 분야에서 국가공인을 받았다.


전문병원인 만큼 해당 분야에만 주력하면 될 법하지만 이들 병원은 그 사고의 틀을 과감히 벗어 던졌다. 단일질환, 단일진료과 만으로는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래서 착안해 낸 아이디어가 바로 ‘의료진 교환 파견’이다. 관절 전문병원의 심혈관센터는 심장 전문병원에서, 역으로 심장 전문병원의 관절센터는 관절 전문병원에서 주도하면 보다 확실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개념을 종합병원에 이입할 경우 각 센터의 전문성을 극대화할 수 있게 된다.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맛집을 한 곳에 모아 놓는 방식이다.


물론 각 센터를 책임질 병원들은 관련 분야에서 명성과 실력을 겸비한 곳이어야 한다. 단순한 센터 외주화가 아닌 명품병원들의 집합소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환자들은 병원 명성을 좇아 방황할 필요없이 한 병원에서 질환에 맞는 최상의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환자도 좋고, 병원도 좋은 구조다.


경쟁력 확보에 목말랐던 병원들은 명성 높은 병원을 선택, 진료의 한 분야를 맡김으로써 확실한 브랜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반대로 선택을 많이 받는 병원은 그 만큼 입지와 외연이 넓어지게 된다. 분야가 겹치는 경우 해당 병원 간 발전적 경쟁을 유도하는 시너지도 기대된다.

 

원격진료 진화 => ‘아바타 프로그램’


심혈관센터 운영 책임을 맡은 세종병원은 단순한 의료진 파견에 그치지 않고 본원에서 모든 환자의 진료정보를 공유, 최적의 치료법을 제시한다.


파견 나간 세종병원 소속 의사는 본원과 상시 교류를 통해 환자에게 가장 이상적인 처방과 치료를 시행하게 된다.


큰 개념에서 보면 원격진료에 가깝지만 세부적 개념으로는 훨씬 진화된 방식이다. 두 병원은 이러한 시스템을 일컬어 ‘아바타 프로그램’이라고 지칭했다.


본원은 컨트롤 타워, 파견 의사는 아바타 역할을 한다는 얘기다. 관리하는 센터가 많아질 경우 본원은 영화 ‘아바타’에서 모든 생명체의 신경망을 연결하는 ‘판도라 행성’이 된다.


이는 단순히 명성만 빌리는 네트워크 병원과 확실한 차이점을 갖는다. 본원에서 의료진을 직접 관리하며 파견된 의사는 2년에 한 번씩 교체한다.


파견에 대한 의료진의 거부감을 없애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술기와 정보를 재장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또 해당 병원에서 의료진 교체 요청을 해오면 언제든 다른 의사를 파견해 준다. 일명 ‘의료진 After Service’인 셈이다.


이 모델이 성공적으로 정착될 경우 국내 병원들의 해외진출에도 중요한 패러다임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단일기관 보다는 컨소시엄 형태가 더 경쟁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유수의 대학병원이 해외진출에 나선다고 했을 때 모든 진료과의 경쟁력을 담보할 수 없거니와 의료진 파견에도 적잖은 고충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전문성이 확보된 병원들의 컨소시엄은 의료수준의 경쟁력을 물론 의료진 공급에도 단일 의료기곤 보다는 수월할 것이란 판단이다.


다만 컨소시엄의 해외진출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참여한 병원들이 외국에서도 통할 수 있는 명성과 의료의 질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 전제 조건이 된다.

 

아버지 이름으로!

사실 이 획기적 전략의 주축인 뉴고려병원 유인상 원장과 세종병원 박진식 원장 모두 아버지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2세들이다.


유인상 원장의 부친은 대한병원협회 유태전 명예회장으로, 병원계 거물급 인사다. 특히 지난 50여년 동안 소외계층 무료진료를 벌여오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묵묵히 실천한 인물이기도 하다.


매년 적자에도 불구하고 사비를 털어 고집스럽게 영등포병원을 운영하는 것도 유태전 회장의 베품의 미학 때문이다.


후덕한 아버지로부터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물려받은 유인상 원장은 의대시절부터 유독 마케팅에 관심이 많았다. 그가 읽은 경영서적만 수 천권에 이를 정도였다.


그 인품과 마케팅력이 빚어낸 결과물이 바로 경기도 김포의 뉴고려병원이다. 병원 부지선정부터 타일 한 장까지 모두 유인상 원장이 관장했다.


유인상 원장이 타고난 마케팅력으로 센터 외주화 전략을 세웠다면 부천세종병원 박진식 원장은 부친이 물려준 명석한 두뇌로 실행에 옮기는 역할을 담당했다.


박진식 원장의 부친은 국내 심장질환 대가인 세종병원 박영관 이사장이다. 박 이사장은 불모지였던 우리나라 심장수술 분야를 개척한 산증인이다.


국내 최초 심장판막 동종이식 및 심장이식, 국내·외 유수 대학병원 심장질환 담당 전문의 양성 및 수탁교육 실시 등 그간 그가 전개한 역동적인 활동이 이를 대변해 준다.


사실 이들 2세가 ‘의료진 교환 파견’이라는 전략을 내 놓았을 때 부친들 모두 반대했다. 생소한 개념이기도 했거니와 시너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던 탓이었다.


하지만 젊은 패기로 뭉친 2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개별 의료기관을 넘어 척박해진 병원환경에 단비가 될 것이라는 논리로 쉼없이 아버지들을 설득했다.


결국 아버지들은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너털웃음을 지으며 획기적 전략을 승낙했다. 오히려 “실패를 두려워 말라”는 덕담까지 곁들였다.


뉴고려병원 유인상 원장은 “이 알고리즘은 향후 대한민국 병원계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게 될 것”이라며 “병원 간 경쟁이 아닌 상생의 관계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병원 박진식 원장도 “국내 병원계에 꼭 필요한 전략”이라며 “오는 7월 첫 시험무대를 통해 그 가능성을 입증해 보이겠다”고 자신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여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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