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제약회사나 도매업체를 상대로 한 병원들의 ‘외상’ 관행 근절에 나선다. ‘의약품 공급자와 수요자의 상생’이 명제지만 병원들에게 적잖은 부담이 될 전망이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병원계에 횡행하는 약품대금 결제 지연 문제의 심각성을 감안해 적절한 해결책 마련에 나서기로 방침을 세웠다.
복지부는 그 동안 이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됐던 다양한 방안을 비롯해 업계는 물론 병원계의 의견을 수렴해 최적안을 도출해 내겠다는 입장이다.
사실 당국이 약품대금 문제 해결을 천명한 것은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복지부는 지난 수 년동안 결제 지연 문제를 풀고자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우선 병원들의 반발이 거셌고, 복지부가 주관하는 법령으로는 시장에서 이뤄지는 상행위를 규제, 관리하는데 한계가 있는 만큼 필요성만 절감해야 했다.
하지만 최근 국회에서 약품대금 결제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법안이 발의되고, 차기 정부가 ‘경제민주화’를 지향하고 있는 만큼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도 분위기가 무르익었다는 판단이다.
복지부 건강보험정책과 배경택 과장은 “의료기관과 제약업계 모두 상생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며 “정부가 중간자적 입장에서 그 해결책 찾기를 돕기로 했다”고 말했다.
현재 복지부는 약품대금 결제 지연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일정을 잡지는 않았지만 그 동안 제시됐던 방안들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일단 ‘의약품 결제 기일 의무화’가 가장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의료기관은 일정기간 내에 무조건 약품 대금을 결제토록 하는 방식이다.
이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오제세 위원장이 발의한 법안과 맥을 같이 하는 방법으로, 복지부 역시 결제 기일 의무화에 애착을 보이고 있다.
복지부 의약품정책과 관계자는 “가장 현실적이면서 실효성을 갖는 방법”이라며 “결제 지연 문제를 풀 수 있는 핵심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의료기관들의 의약품 결제일은 평균 7개월이었으며, 570일이나 걸린 사례도 복지부 조사에서 드러난 바 있다.
국회에 제출된 법안에는 의약품 결제기일을 3개월 이내로 제한하고, 이 기한 내 대금을 지불하지 않을 경우 의료기관이 이자를 지급토록 규정돼 있다.
복지부가 단기간 도입은 어렵지만 장기적으로 검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는 방안은 ‘약값 직불제’다.
직불제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병원에게 지급하던 약제비를 제약사나 도매상에게 직접 전달하는 방식이다. 당연히 병원들의 엄청난 반발이 예상된다.
병원들은 제약회사나 도매상으로부터 약을 받아 입원환자에게 사용한다. 약이 소비되면 건보공단에 약값을 청구하고 보험급여비를 받는다.
약이 의료기관에 들어온 후 급여비가 지급될 때까지 평균 소요기간은 50~60일. 하지만 이 시점에 맞춰 약품 대금을 결제해 주는 병원은 드물다.
때문에 보험자인 건보공단이 의약품 공급자인 제약회사나 도매상들에게 직접 약값을 지불하겠다는 취지의 제도다.
하지만 이는 워낙 첨예한 만큼 단기간에 도입하기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을 시도해 보겠다는게 복지부의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직불제는 검토 대상이기는 하지만 현실성이 높지는 않다”며 “모든 가능성과 방안을 열어놓고 논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 시장의 유통과정 상의 문제인 만큼 공정거래위원회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법 개정도 복지부의 로드맵에 포함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