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정상화가 시급하다.”
최근 열린 국무회의에서 건강보험 재정 낭비를 강도 높게 비판한 윤석열 대통령 발언으로 인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기조로 하는 문재인 케어가 폐지 수순으로 향하는 것이 기정사실화 되는 모양새다.
윤 대통령은 12월 중순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케어로 악화된 건강보험 정상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건강보험은 국민 건강을 지키는 최후 보루”라며 “지난 5년간 보장성 강화에 20조원을 넘게 쏟아부었지만 의료 남용과 무임승차 방치로 대다수 국민에게 부담이 전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인기영합적 포퓰리즘 정책은 재정을 파탄시키고 건강보험 제도 근간을 해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급여기준과 자격기준 강화를 통해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방지하고, 절감된 재원으로는 의료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환자들을 두텁게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윤 대통령은 “중증질환처럼 고비용 필수의료는 확실히 보장될 수 있게 하는 게 건강보험제도 요체”라며 “지속 가능성을 제고하고 중증질환 치료 및 필수의료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대선 기간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서도 문케어를 저격한 바 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지속 불가능한 보건 포퓰리즘 문케어가 결국 국민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제가 대통령이 되면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 개편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 “국민의 건보료 부담이 무분별하게 늘어나지 않게 하겠다”며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부과체계를 소득중심 방향으로 점차 개편해나가겠다. 각종 세금 폭탄에다가 건보료 폭탄까지, 올해가 마지막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정 건전성 강화하면서도 필수의료 영역 두텁게 보호
사실 윤 정부 들어 문케어 축소 및 폐지 흐름은 조금씩 구체화돼 가고 있었다.
지난 8월 보건복지부는 필수의료 분야를 강화하고 지속 가능한 건강보험 제도를 만들기 위해 이른바 필수의료 확충을 위한 건강보험 재정개혁추진단을 발족했다.
복지부는 “비급여를 급여화하는 과정에서 환자 부담이 낮아짐에 따라 일부 항목에서는 예상보다 이용량이 급증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례로 MRI 및 초음파를 들었다. 복지부에 따르면 뇌·뇌혈관 MRI 재정지출은 지난해 2529억원인데 이는 당초 목표 집행률의 123%에 달한다.
하복부·비뇨기 초음파 재정지출 또한 연 499억원 목표 대비 685억원을 사용해 집행률이 137%에 이른다.
이에 복지부는 추진단 운영을 통해 기존에 급여화된 항목을 중심으로 과다이용이 있는지를 재점검하고 관리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합리적이고 적정 수준의 의료이용을 유도하기 위한 지출구조 개혁방안을 세우면서도 국민에게 꼭 필요한 필수의료서비스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재정 효율화와 함께, 보편적 보장성 강화보다 특정 영역에 집중한 건보재정 정책을 펼칠 것으로 시사되는 대목이다.
윤 정부 들어 ‘필수의료’와 ‘두텁게 보장’한다는 키워드가 여러 차례 강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출 축소가 자칫 보장성 축소, 더 나아가서는 의료 민영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을 막기 위한 방어책으로 보인다.
복지부는 “추진단은 국민분들이 현재 받고 계시는 건강보험 혜택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재정지출이 급증하는 항목이나 과다의료이용 등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것을 목적하고 하고 있다”라며 “이와 더불어, 응급·고위험 수술, 분만과 같은 필수의료분야는 두텁게 보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MRI 급여 재점검하고 환자 본인부담도 ‘상향’
추진단이 이후 발표한 대책은 ‘MRI와 초음파’를 겨낭하고 있다.
복지부가 12월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및 필수의료 지원 대책에는 대표적으로 ▲MRI·초음파 검사 등 급여 항목과 기준에 대한 재점검 ▲공정한 건강보험 자격관리 ▲합리적 의료이용 유도 ▲재정누수 점검과 비급여 관리 등이 포함됐다.
복지부는 여기서도 “일률적인 급여화로 인해 뇌·뇌혈관 MRI 등 일부 항목을 중심으로 의학적 필요가 불명확한 검사가 시행되는 등 과잉 의료이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보장성 강화’를 ‘일률적인 급여화’로 수정, 사실상 문케어 기조의 폐지를 암시하는 셈이다.
복지부는 “앞으로 남용이 의심되는 항목은 급여기준을 명확하게 개선하며, 당초 급여화 예정이던 근골격계 초음파ㆍ자기공명영상(MRI)은 의료적 필요도와 이용량 등을 분석해 필수 항목을 중심으로 제한적 급여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약제와 치료재료, 요양병원 관리 강화 방침도 내세웠다.
약제 재평가와 다양한 유형 위험분담제를 적용한 고가약 관리를 강화하고 치료재료 실거래가에 대한 조사방식을 개선하며 요양병원 기능 재정립과 성과-보상 연계 강화도 추진한다는 것이다.
일정기간 투약 후 효과가 없을 경우 업체가 약가를 일부 환급하거나 환자 1인당 사용한도 초과 시 초과분 일정 비율을 업체가 일부 환급하는 방법 등이 고려된다.
또한 복지부는 “현행 건강보험체계에서 과다 의료이용·공급에 대한 관리기전 부족으로 도덕적 해이와 불필요한 의료남용 발생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자체적으로 진단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과다 외래의료 이용자의 건강보험 본인부담률을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중증질환 등 불가피한 예외 사례에 대한 논의도 병행한다는 것이다.
경증 질환에 적용되는 산정특례를 제외하고 건강보험 본인부담금이 상한액을 초과하는 경우 환급되는 금액도 조정한다는 계획이다.
백내장 수술용 다초점 렌즈, 도수치료, 하이푸시술(고강도 초음파 사용 자궁근종 제거 시술) 등 규모와 가격편차, 증가율이 높은 비급여 관리 및 실손보험 개편 논의 방침도 밝혔다.
한편으로 응급진료 보상 강화, 수술수가 인상, 분만과 소아 진료기반 유지 등 필수의료 강화 방안도 함께 짚었다.
하지만 야당은 새로운 정책이 ‘문케어 지우기’와 다름없다며 즉각 비판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황명선 대변인은 “윤석열 대통령이 재정 적자를 핑계로 문재인 케어를 사실상 폐기하겠다고 선언했으나 정말 폐기하려는 것은 건강보험의 보장성”이라고 비판했다.
황 대변인은 “문재인 케어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해온 역대 정부의 일관된 정책 방향 위에 있다. 역대 정부는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일이 없도록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해왔다”고 밝혔다.
이어 “전체 재정 규모에서 극히 일부만을 차지하는 과잉진료비를 침소봉대해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폐기하려는 것은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태우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의료비 지출이 높은 고령층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사회구조 변화에서 지속 가능한 건강보험을 위한 논의는 필요하지만 전 정부의 정책 지우기라는 목적에 급급해 국민 삶을 망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건보재정 효율화를 내세운 윤 정부의 입장이 단호한 만큼 논란은 추후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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