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수술 강국' 선도 고대 김선한 교수
2009.04.03 02:10 댓글쓰기
200만부가 팔린 스펜서 존슨의 대표작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는 변화에 대처하는 네 가지 캐릭터가 등장한다.

평생을 풍족하게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은 치즈가 바닥나자 미련 없이 다른 치즈 창고를 찾아 떠나는 두 마리 생쥐와 갈팡질팡하는 두 명의 꼬마. 헴은 텅 빈 창고에 남아 ‘누가 내 치즈를 옮겼는지’ 무의미한 고민을 반복하지만 허는 망설임 끝에 익숙한 보금자리를 떠나 새로운 창고를 발견해낸다. 당신은 ‘어느 쪽’에 속하는가.

고려대 안암병원 대장항문외과 김선한 교수는 복강경 수술의 달인이다. 한솔병원에서 대장암복강경수술센터 소장으로 4년간 근무하면서 600여 회의 복강경 수술을 실시했고, 동국대학교 일산병원을 거쳐 모교로 돌아오기까지 이제껏 그가 실시한 수술 횟수는 총 1200회에 달한다. 그런 그가 요즘 자주 언론에 소개되는 이유는 다름 아닌 로봇수술 때문이다. 복강경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을 법한 김선한 교수가 생경한 분야인 로봇으로 눈을 돌린 까닭은 무엇일까.

“처음엔 저도 비판적인 입장이었어요. 그런데 1년 반 정도 경험해보고 나니 ‘이거다’ 싶었죠. 복강경이 10년 전엔 대부분의 의사들이 반대했지만 지금은 보편적인 수술로 각광받고 있는 것처럼, 로봇수술도 머지않아 그렇게 될 거라는 확신이 듭니다. 제대로 된 술기만 전파된다면 5년 내 가능할 거라 봅니다.”

로봇수술의 종주국은 미국이지만 현재 수술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전립선암으로 시술 대상이 한정돼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갑상선암, 직장암 등 다양한 질환에서 광범위한 시술이 이루어지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김선한 교수는 한국을 로봇수술 강국으로 우뚝 세운 주역으로 기꺼이 세브란스병원을 꼽는다.

“세브란스병원은 시술 범위를 넓힌 측면에서도, 수술건수 측면에서도 압도적인 우위를 자랑합니다. 다빈치를 만든 미국을 제치고 한국의 우수한 로봇술기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데는 세브란스의 공이 컸죠.”

복강경이든 로봇이든 환자 위한 치료라면 “OK”

얼마 전 김 교수는 EBS 메디컬 다큐멘터리 ‘명의’ 93회 주인공으로 전파를 탔다. 촬영기간은 3주 남짓. 방송에서는 ‘직장암 나는 10년 후를 본다’는 주제로 김선한 교수의 진료 일과 및 환자 인터뷰, 미국 클리브랜드클리닉에서의 요청으로 실시한 직장암 로봇 라이브서저리 등이 소개됐다.

방영 후 ‘명의’ 게시판에는 김선한 교수편을 인상 깊게 봤다는 시청자들의 소감이 줄을 이었다. 특히 “젊은 의사들은 매일 똑같은 수술을 반복한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나에게는 환자 한 명 한 명이 다 다른 수술”이라고 밝힌 김 교수의 멘트는 일반인들은 물론 의사를 지망하는 많은 청소년 및 의대생에게 깊은 감명을 줬다.

의대 본과 3학년에 재학 중이라고 신분을 밝힌 한 누리꾼은 “겨울방학 때 세브란스병원에서 서브 인턴십을 했는데 수술장에서 매일 같은 일의 연속이라고 푸념하는 레지던트 선배들을 많이 보면서 나도 공감한 적이 있다”며 “방송을 보면서 힘들어도 김선한 교수님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술회했다.

암을 치료하기 위한 수단이라면 복강경이든 로봇이든 최선을 다해 수술에 임하는 김선한 교수의 헌신적인 자세가 환자는 물론 후배들까지 감동시킨 것이다.

“방송직후 말기 암 환자가 남긴 후기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대장암 4기 환자인 그 분은 평소 의사를 신임하지 않았는데 방송을 통해 세상을 떠나기 전 훌륭한 의사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가서 다행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순간 가슴이 뭉클해지는게, 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풍부한 복강경 시술경험으로 이미 해외에서 인지도를 얻고 있던 김선한 교수는 로봇수술을 집도하면서 보다 효율적인 수술법을 고민하던 중 자체개발한 단단계 술기(1-Stage-Technic)로 또다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로봇수술은 특성상 제한된 공간에서 보기가 편해요. 그래서 전립선암에서 주로 시술해온 것이죠. 그런데 직장암에 들어오면 얘기가 좀 달라져요. 직장암의 경우 복강경과 로봇을 혼합하는 방식으로 그동안 시술이 이루어졌는데, 저는 로봇수술만으로 한 번에 끝내는 술기를 고안해냈어요. 그게 단단계 술기라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서구에는 비만 체형이 많은데, 직장암 환자가 비만일 경우에는 수술 난이도가 올라가 로봇수술 도중 개복수술로 전환하는 사례가 많았다. 그러나 단단계 술기를 활용하면 복강경이나 개복수술을 혼합하지 않고 로봇수술만으로 만족스런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 것이 바로 미국 학계가 김 교수를 주목하는 이유다.

20여 회의 단단계 술기를 적용해보고 확신을 갖게 된 김 교수는 그해 이를 발표, 새로운 수술법으로 인정받았다. 이후 미국 인튜이티브사의 제안으로 미국대장암학회에 김 교수의 수술과정 녹화본이 매뉴얼로 배포됐고, 세계적인 의료기관으로 손꼽히는 메이요클리닉, 클리브랜드클리닉으로부터 요청받아 수술 생중계를 성공적으로 마치게 된다.

“로봇수술 강국, 앞으로 경쟁력 충분”

김선한 교수는 로봇수술이 의사 입장에서 복강경에 비해 하기 쉬우면서도 환자 만족도 측면에서는 뒤지지 않기 때문에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또한 미래 의학이라 불리는 로봇수술 분야를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후배들을 교육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본인이 직접 그 역할에 나섰다.

“온라인 게임 등에 익숙한 ‘게임 세대’들은 더 쉽게 로봇술기를 익힐 수 있을 겁니다. 누가 먼저 고지에 오를 것인가가 문제겠죠. 앞으로 외과에 우수한 인재가 많이 와서 활약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서 꼬마인간 허는 헴이 늦게라도 치즈창고를 찾아오길 바라며 동굴 벽에 이런 메모를 남긴다.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새로운 치즈를 마음속으로 그리면 치즈가 더 가까워진다.’

최고의 자리에서도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더 나은 치료법을 고민해온 김선한 교수. 그 앞에 ‘새로운 치즈’로 가득 찬 치즈창고는 이미 가까워 보인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9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
메디라이프 + More
e-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