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이비인후과 분야에서 큰 획을 긋는 업적이 국내서 이뤄졌다. 바로 단일 의사에 의한 인공와우 이식 1000례 달성이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세워지지 못한 대기록이 서울아산병원 이광선 교수의 손에 의해 탄생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청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광선 교수로부터 국내 인공와우 이식 현황 및 1000례 달성 과정, 진료철학, 향후 과제 등을 들어봤다. 진중하면서도 온화한 목소리에서 ‘대가’(大家)의 풍모와 기운이 느껴졌다.
"난청 해결 통해 환자와 가족 삶의 질 향상 기여 보람"
이광선 교수[사진]가 인공와우 이식을 처음 시작한 시점은 지난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후반기 환자 2명에게 시술한 것이 고작이었다. 한국서는 1988년 첫 시술이 행해졌지만 이광선 교수가 시행하기까지 전국적으로 100건이 안될 정도로 일반화되지 못했다.
그는 “대중들에게 보청기는 널리 전파돼 있었지만, 당시 인공와우는 상당히 낯선 개념이었다”며 “특정 방송국 시사 프로그램 영향으로 2000년대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시술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해당 프로그램에서는 인공와우를 조명하는 내용을 주요 병원별로 다뤘다. 이광선 교수는 “촬영이 있든 없든 평소와 다름없이 진료에 임했고 수술했다. 그런데 나중에 방송을 보니 마치 서울아산병원이 주인공인 것처럼 편집돼 있어서 적잖게 당황스러웠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국내 인공와우 이식은 2005년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건강보험이 적용된 것이다. 2010년에는 ‘양이(兩耳) 수술’까지 급여가 인정됐다.
이전까지는 장비가격만 2000만원 가까이 소요되기 때문에 인공와우 시술에 대한 비용 부담감이 크게 작용했다. 저소득 계층의 경우 정부 지원금이 없다면 아예 시술 고려 자체를 하지 않을 정도였다.
보험 급여화가 진행되자 이광선 교수는 말 그대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환자가 몰리면서 어떤 날은 수술 5건(귀 5개)을 동시에 진행할 정도였다.
이광선 교수는 “여러 수술실을 오가며 인공와우 시술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하다 보니 국내 단일 술자 최초 '1000례’라는 기록을 세운 것 같다”고 말했다.
단일 술자 1000례 기록은 외국에서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러시아, 중국, 폴란드 등에 4~5명 정도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회주의체제 국가는 정확한 술자별 시술 통계가 불투명하거나, ‘몰아주기식 통계’를 산출하는 경우가 있어 신뢰도가 많이 떨어진다.
이광선 교수는 “우리보다 인공와우 시술을 먼저 시작한 일본도 1000례 달성을 했다는 소식을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선천성 난청은 거의 정복-고령층은 난청 사각지대로 제도적 지원 시급"
인공와우 시술은 생후 10개월부터도 가능하다. 조기 진단을 통해 빠르게 시술할수록 선천성 난청 장애를 겪지 않을 수 있다. 현재 신생아실에서 난청 여부 감별은 이뤄지고 있다.
이광선 교수는 “인간의 오감(五感)에 해당하는 청각은 충분히 의학적 시술로 해결할 수 있다”며 “중요한 점은 ‘청신경’이 얼마만큼 살아 있느냐 여부다. 청신경에 크게 문제가 없는 소아는 대부분 인공와우 시술을 통해 정상인과 마찬가지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선천성 난청 판정을 내리면 부모들은 눈물부터 흘린다”며 “MRI 진단 결과를 토대로 치료계획, 시술 후 경과 등을 꼼꼼히 설명해 부모의 안쓰러운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다”고 덧붙였다.
이광선 교수는 청각의 중요성을 ‘가정 화목’에 빗대어 표현했다. 선천성 난청 아이가 있을 경우 경제비용 지출, 대화 단절, 사회생활 부적응 등으로 인해 일반적인 가정의 생계 유지 자체가 어렵다는 전언이다.
그는 “헬렌켈러도 청각, 시각 중 어떤 감각을 회복하고 싶냐는 질문에 사회적 소통을 내세워 ‘청각’이라고 답했을 정도”라며 “듣고, 말하는 것 자체가 그 정도로 중요한 문제다. 선천성 난청은 인공와우 시술로 조기 진단, 치료가 가능해졌기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언급했다.
문제는 60~80대 연령층이다. 현재 우리나라 사회는 급격한 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후천성 난청 인구가 덩달아 늘고 있다. 특히 60~80대 연령층 중 돌봐주는 사람이 없는 계층은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부 보청기 업계에서 ‘저가 마케팅’ 전략을 고수하면서 상대적으로 인공와우 시술에 대한 부담감도 여전하다. 하지만 보청기는 보험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실질적인 환자 부담 액수는 그렇게 차이 나지 않는다.
이광선 교수는 “인공와우 시술은 보험화가 됐기 때문에 보청기 구매와 비교해도 크게 비용 차이가 나지 않는다”며 “노년층 난청 문제는 국가 차원의 복지 제공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즉, 저소득 노년층 난청 문제 해결은 사회적 고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망’이라는 것이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면 일자리를 구할 수 없고, 이는 곧 경제난으로 빠지게 되는 악순환의 반복으로 이어진다는 의견이 곁들여졌다.
이광선 교수는 “인공와우 이식술 대상자 중 81세가 최고령이었다. 물론 80대가 정상 청력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40대와 60대는 결과가 비슷한 만큼 향후 정부 차원에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다면 노년층 난청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첨단기술 접목 진화하는 인공와우
전 세계 인공와우 시장은 Advanced Bionics, Cochlea, Med-El(이상 ABC순) 3대 업체가 선도하고 있다. 이광선 교수는 차기 변혁의 키워드로 ‘초소형화’, ‘배터리 교체 문제’ 등을 꼽았다.
이광선 교수는 “아직 겉으로 인공와우 장비가 보이기 때문에 외관상 문제가 있다”며 “크기를 최소화함으로써 불편함을 해소하고, 배터리 교체 수준을 개선하는 혁신적 장비가 가까운 시일 내 출시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지난해 Med-El은 세계 최초 일체형 인공와우 오디오 프로세서 ‘RONDO’를 선보였다. 해당 제품은 기존 귀걸이형 인공와우 단점을 개선해 난청인들이 겪을 수 있는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해소시켰다.
그는 “인간의 장기를 대체하는 의료기기 중에는 인공와우가 가장 발전했으며, 해를 거듭할수록 환자 편의성을 높인 제품이 개발되고 있다. 또한 다른 장기와 달리 공산품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생산이 가능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이광선 교수는 “청각은 진단을 내릴 때부터 치료방법이 결정된다”며 “의료진 본연의 임무를 되새겨 정확한 진단을 통한 올바른 처방을 내려야 한다. 환자를 ‘돈벌이’ 대상으로 보는 순간, 그 사람은 의사가 아니다”고 단언했다.
한편, 서울아산병원은 오는 1월23일 연구원 지하 대강당에서 ‘인공와우 이식 1000례 기념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이날 이광선 교수는 ▲인공와우 회사별 특성 및 장점 ▲양측 인공와우 수술 결과 등을 토대로 기념강의를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