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과의 전문 영역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보건복지부가 정신건강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정작 전문가들을 배제했고 여기에 늘어나는 항우울제 처방에서도 타 진료과에 비해 입지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학회는 지난 1월 보건복지부 관계자들과의 협의를 통해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 공동명의의 안내책자를 발간하는 등 부랴부랴 발등의 불을 끄고자 노력했지만 전문 영역을 확보하는 사안은 앞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다.
4일 대한우울·조울병학회는 서울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춘계학술대회 및 연수교육을 갖고, 특별프로그램으로 ‘국내 항우울제 사용 현황과 당면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국내 항우울제 사용 현황은 점차 증가하는 상황임에도 정신건강의학과의 우울증 환자 증가율은 둔화돼 내과와 신경과 증가율에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기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를 살펴보면 우울장애가 주 상병인 경우 총 66만명 진료 환자에서 26개 타과 진료가 14만명, 정신건강의학과 진료가 52만명으로 확인됐다.
특히 신체질환이 주 상병이고 우울장애가 부 상병으로 판단된 경우는 전체 25만4000명 중 2만2000명만이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진료를 받았다.
정신건강의학과의 입지는 줄어든 반면 타과 처방이 더 우세하게 나타난 것이다. 약물계열별로도 SSRI(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는 정신건강의학과가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신경통, 섬유근육통 등에도 처방되는 TCA(삼환계 항우울제)에서는 내과가 더 높았다.
이 같은 위기는 사실상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난 2011년부터 SSRI에 대한 급여기준을 놓고 신경과와 치열한 논쟁을 벌여 60일 이내 라는 원안을 지켰지만, 정신건강의학과의 진료 영역이 확대되지 않는 상황 탓에 큰 흐름을 바꾸지는 못한 것이다.
더욱이 최근 항우울제가 급속히 늘었음에도 실제 이를 적용받는 약제는 SSRI계열과 NaSSA 계열의 미르타자핀, 부프로피온 계열 세가지가 정도에 불과하며, SNRI 등 non-SSRI 약에 대한 기준은 모호하다.
이에 학회 내에서는 전문영역을 지키기 위한 관점을 건강보험 문제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의료정책에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제기됐다.
이상열 교수(원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건강보험국이 아니라 의료정책실과의 소통을 넓혀야 한다”면서 “단순히 약물만으로 우울증을 치료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약물과 정신치료 통합의 중요성을 알리고 부 상병으로 우울증에 대해 전문적 진단이 실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석정호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보험이사도 “단순한 생물학적 치료로는 한계가 존재한다. 정신역동을 고려한 치료가 필요하다”며 “우울증 치료는 생물, 심리, 사회적 모델에 의한 통합적 이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국가적인 관심이 상승하는 상황에서 정신과에 대한 편견을 줄이고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면서 “국민의 정신건강을 비전문가에게 맡기는 일이 없도록 해야한다. 오히려 전문성을 넓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