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대진 기자] 그랬다. 오랜기간 자타공인 위암(胃癌) 치료 맹주는 일본이었다.
위암 발병률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극동아시아. 그 중에서도 일본이 세계 위암 치료의 중심이었다. 수술, 연구, 교육 등 위암과 관련한 모든 분야에서 일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같은 극동아시아에 속한 한국과 중국 등 위암 발병률이 높은 나라 의료진의 벤치마킹 대상 역시 일본일 수 밖에 없었다.
위암 분야에서 일본 독주는 서울의대 김진복, 연세의대 민진식 교수 등장과 함께 서서히 무게중심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특히 故 김진복 교수는 일본 의료진이 주축이 된 국제위암학회(International Gastric Cancer Association: IGCA) 창립멤버로 참여해 위암 분야에서 한국의 저력을 예고했다.
그는 1980년대 들어 후학들과 함께 국내 위암치료 수준을 세계적 반열에 올려 놓았다. 스승을 보필하며 밤낮으로 ‘위암’에만 정진한 제자가 바로 양한광 서울대암병원장이다.
양한광 병원장은 최근 열린 국제위암학회 집행위원회(IGCC 2022)에서 차기 사무총장으로 선출됐다. 비일본계 의료인으로는 최초다.
지금까지 국제위암학회 사무총장은 주도권을 갖고 있는 일본에서 줄곧 맡아 왔으나 한국의 우수한 위암 치료 및 연구 실력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면서 자연스레 무게추가 이동했다.
실제 서울대병원 데이터를 근거자료로 국제 위암 병기(病期) 분류가 이뤄졌고, 중개연구 분야 연구실적 지표(H-index)에서 ‘위암’은 세계 20위 내에 한국 의료진이 4명이나 포진해 있다.
아울러 위암환자 5년 생존율은 한국이 68.9%, 일본이 60.3%로 앞서는 등 여러 객관적 수치에서 세계 위암 분야의 중심국으로 주목받고 있다.
양한광 병원장은 “개인적인 영광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의 달라진 위암 치료 위상을 인정 받았다는 점이 더 고무적”이라고 평했다.
아울러 “선각자들과 선후배 동료들이 함께 이룩한 성과”라며 “이제는 당당히 세계 위암치료의 표준을 제시하고 선도해 가고 있음이 가슴 벅차다”라고 덧붙였다.
"비일본계 의료진 최초 선출 쾌거로 한국 달라진 위상 반영"
"국내 의료진이 함께 만들어낸 성과로 세계 위암치료 상향 평준화 위해 노력"
"후학들은 전문성과 글로벌 경쟁력 갖췄으면 하는 바람"
국제위암학회는 위암 분야 세계 최고 학술단체로, 1995년 일본에서 설립됐다.
한국을 포함해 일본, 중국, 유럽, 미국 등 전 세계 의료진이 참여하고 있는 이 학회는 위암 예방, 진단 및 치료 발전을 위한 국제학술대회, 병기 제정 등 학술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국제위암학회 회원수는 일본이 477명으로 가장 많고, 중국 446명, 한국 186명, 브라질 133명, 캐나다 73명, 이탈리아 54명 등 수 천명이 활동 중이다.
양한광 병원장은 오는 2023년 6월부터 4년 동안 국제위암학회를 이끌게 된다.
그는 임기동안 전세계 위암치료의 상향 평준화를 위해 의술 수준이 낮은 개발도상국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 술기교육과 지원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3만건 이상의 위암수술 경험을 토대로 구축된 임상 노하우와 술기를 개도국 의료진에게 전수함으로써 보다 많은 위암환자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다.
양한광 병원장의 ‘공유의 미학’은 그동안의 행보에서도 지속돼 왔다.
그는 위암치료 수준 향상을 위한 국제 공동연구, 국제 위암 병기(病期) 분류, 복강경 위암수술 도입 등 다양한 학술연구 활동을 이어왔다.
또한 세계 각국의 초청을 받고 현지에 나가 위암수술 시범과 강의로 술기와 연구업적을 세계 속에 알리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임상 및 기초연구 활동 결과로 위암수술과 연구 견학을 위해 서울대병원 위암센터를 다녀간 해외 의학자가 320여 명에 이른다.
그는 “전 세계 위암 분야 의료진과의 긴밀한 협력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라며 “위암치료 개발도상국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도입 등을 통해 선진 치료법을 공유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도 스승과 선배들의 관심과 배려 속에 성장했듯 차세대 위암 전문가 육성에도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이미 내부적으로는 서울대암병원 위암센터 후배와 제자들에게 진료, 연구, 산업 등 위암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과 경쟁력을 갖춰 나갈 수 있도록 세팅을 완료했다.
내년 6월부터 국제위암학회를 이끌게 된 만큼 시야를 넓혀 전세계 차세대 인재 양성에 심혈을 기울이겠다는 각오다.
그 일환으로 국제위암학회 내에 차세대위원회(가칭)를 발족해 스승과 선배들의 뒤를 이어 위암치료 발전을 주도해 나갈 수 있는 주역으로 성장시켜 나갈 예정이다.
한국에서는 서울대암병원 위암센터 박도중 교수가 지목됐고, 일본, 중국, 미국 등 회원국들에게도 차세대 주자 참여를 독려하는 등 벌써부터 군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양한광 병원장은 “차세대 인재 양성은 긴호흡이 필요한 일”이라며 “향후 바통을 이어 위암치료 발전을 이끌 주역들을 성장시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고 설파했다.
이어 “차세대 주자들에게 이미 닦아 놓은 길을 가려하기 보다 과감한 개척정신과 열정으로 새로운 길을 닦아 나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