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울제 SSRI(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s)의 처방권을 둘러싼 진료과 간 갈등이 장외전으로 확산되는 모습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신경과, 가정의학과 등 학회 중심이던 공방전에 환자들까지 가세했고,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를 넘어 다른 부처에까지 사태 해결 요구가 잇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파킨슨 환자의 아내 박 모씨는 최근 규제개혁위원회에 SSRI에 관한 민원을 제기했다. 현행 약제사용 기준이 과도한 규제인 만큼 개선이 필요하다는 요구였다.
실제 현행 국내 규정에는 정신건강의학과를 제외한 타 진료과 의사들의 SSRI 처방을 60일 이내로 제한하고, 상용량 또는 기간을 초과해 처방할 경우 정신건강의학과로 문의토록 명시돼 있다.
이 기준으로 인해 정작 타과 질환자들이 SSRI가 필요해도 급여를 받지 못해 고충이 크다는게 민원의 요지였다.
박 모씨는 “우울증은 파킨슨 환자에게 흔히 나타나는 질환이지만 신경과에서는 SSRI 처방이 제한돼 있어 환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히 “파킨슨 환자들은 거동이 느리고 넘어져 다치는 경우가 많음에도 SSRI를 보험급여로 처방받기 위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정신과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때문에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과 불편 해소를 위해서라도 SSRI를 신경과에서도 급여 처방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이 민원 외에도 최근 규제개혁위원회와 국민권익위원회 국민신문고,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에는 SSRI 처방에 관한 민원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SSRI 처방 문제에 대한 각 학회의 적극적 공세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대한신경과학회는 홈페이지에 SSRI 관련 탄원서 양식을 게재하고, 회원들이 다운받아 작성한 후 보건복지부에 제출토록 독려하고 있다.
각 정부부처에 접수되고 있는 민원 역시 신경과학회에서 제공하는 탄원서 내용이 대다수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대한신경과학회 관계자는 “회원들 뿐만 아니라 환자나 보호자들도 SSRI 처방에 대해 관심이 높다”며 “일반인들이 생각해도 부당한 규제인 만큼 의사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측은 현행 규정 사수에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신경정신의학회 이민수 이사장은 “비전문의에게 SSRI 처방을 2개월로 제한하는 것은 환자에게 최적의 치료를 제공하기 위함”이라며 “우울증 있다고 SSRI를 처방하는 식의 접근은 위험하다”고 덧붙였다.
우선 2개월 동안 치료해 본 후 호전이 없다면 전문가인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에게 문의 함으로써 올바른 치료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민수 이사장은 “정신질환은 무조건 약만 쓴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정신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해야 하고, 숙련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