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마다 내걸은 '노벨의학상' 프로젝트
박근혜 정부, 'Next-decade 100' 제시…학계 '쏟아내는 정책보다 연속성 중요'
2016.01.01 12:00 댓글쓰기

[기획 3]

언제나 그렇듯 노벨상 시즌이 지나가면 한국인 수상자가 없는 것을 두고 비판론이 쏟아졌다. 이를 의식한 듯 정부가 다시 ‘노벨상 프로젝트’를 내놨다.


정부는 올해 노벨상 발표 직후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 배출을 위한 ‘넥스트 디케이드 100(Next-decade-100)’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2025년까지 10년 동안 30세 안팎의 과학자 1000명을 뽑아 약 8000억 원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세계 정상급 연구자 1000명, 기초연구를 통한 세계 1등 기술 10개 창출이 목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0월 22일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기초연구·소재기술 발전방안 보고회 겸 제27차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향후 노벨상에 도전할 세계 톱클래스 연구자를 양성하고 강점 분야를 중심으로 세계적 수준의 수월성을 확보하기 위한 민관 합동의 전략적 지원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일부 언론에서 우리나라 기초과학 수준이 노벨과학상 수상에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우리도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창의적인 연구에 매진한다면 머지않아 기초과학 대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구자 중심형 기초연구비 30% 확대…‘한 우물 파기’ 연구 지원


이번 프로젝트는 지난 10년간 노벨상 수상자 73명 중 절반이 넘는 48명이 20~30대에 수행한 연구업적으로 수상했다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분석 결과 탄생하게 됐다.


정부는 2025년까지 해마다 젊은 과학자 100명씩을 선발해 1인당 8억 원을 5년간 지원할 예정이다. 선발된 과학자는 연구 주제별로 1년 차 연구실 구축비로 2억~5억 원을 받고 2년 차 이후 1억~2억 원 등 5년간 연구비를 안정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다.


이번 제27차 자문회의에는 국회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교육부·미래창조과학부·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 장관과 경제단체장, 산학연 관계자 등 각계 인사 150여 명이 참석해 현장의 산학연 전문가들과 함께 토론했다.


자문회의는 첫 번째 주제인 ‘미래 창조사회 구현을 위한 기초연구 발전 방안’으로 넥스트 디케이드 100과 같은 세계 톱클래스 신진 인력 양성방안과 함께 ▶연구자 맞춤형 연구 지원체계 확립 ▶평가체계 혁신 ▶과학기술·사회 연계 강화 등 4대 방향을 제시됐다.


특히 자문회의는 연구지원 체계에 있어 주어진 과제를 연구하는 게 아니라, 연구자가 창의적 아이디어를 상향식으로 제안하는 ‘연구자 중심형’ 기초연구비 비중을 현행 22%에서 2017년 30%로 늘리는 등 지속적으로 확대할 것을 제안했다.


반대로 현재 78.3%에 이르는 하향식 기초연구비는 70% 수준으로 줄이기로 했다. 연구비 배분을 연구자 수요와 연구 분야별 특성을 반영해 탄력적으로 운영하면 5∼10년이 걸리는 장기 연구가 가능해져 연구자가 마음 놓고 ‘한 우물’만 팔 수 있는 연구 환경이 구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 같은 ‘한 우물 파기 연구’ 지원을 강화해 곤충학, 전염병, 해양학, 지질공학 등 취약하거나 소외된 분야에서도 평생 한 분야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기존 논문 편수 근거했던 평가체계도 개편

 

개편안에는 연구자의 과거 과제나 성과 실적 등 객관적 데이터에 근거해 평가하고 집단토론 평가 및 논문 평가에 국제 동료 과학자의 평가를 반영하거나 상위 10% 과학저널의 에디터 등을 평가자로 활용하는 등 평가법을 다양화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또 과학기술과 사회의 연계를 높이기 위해 여러 분야 전문가 및 시민포럼을 구성해 신종 감염병, 사이버 범죄 등 사회적 난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모색키로 했다.


노벨상은 지금까지 50개 나라에 790개가 수여됐다. 아시아를 보면 일본은 21개, 중국은 5개, 심지어 1인당 국민소득이 1600달러에 불과한 인도도 7개를 수상했다.


특히 미국은 전체 노벨상의 40%에 해당하는 320개를 받았다. 반면 우리나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받은 평화상을 제외하면 학술 분야에서는 단 한 개의 노벨상도 타지 못했다.


이를 두고 정부가 편성하는 연구개발(R&D) 예산이 터무니없이 적다는 주장이 해마다 제기된다. 하지만 R&D 예산 총액은 미국이 가장 많고 다음이 중국이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로는 한국이 단연 많다.


사실 우리나라는 R&D 예산이 GDP의 4%를 넘어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실제 R&D 예산 비중은 미국보다 2배 가까이 많다. 따라서 예산이 적다는 주장은 사실과 차이가 있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정부 정책이 창의적인 연구를 방해해 왔다는 의견도 나온다. 노벨상을 타려면 창의적이어야 하는데 단기간에 성과를 내는 연구에만 관심이 쏠리다 보니 안전하고 실패율이 낮은 연구를 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매년 예산 편성 때마다 성과만 재촉하고, 실제로 3년 정도 안에 어떤 성과를 내지 못하면 국회 국정감사 때 질타를 받게 되고 연구비가 중단되는 일은 공공연한 사실이 됐다.


R&D 예산을 편성할 때 연구과제를 객관적 기준으로 판단하기보다 인맥 등이 더 중요하게 작용되는 게 문제라는 주장도 나온다.


서울의 한 의과대학 교수는 “이 같은 현실이 개선되지 않는 한 앞으로 20년 안에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어쩐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명박 정부에서도 기초과학연구원을 중심으로 실적이 우수한 50명의 과학자에게 10년간 연간 100억 원씩 지원하는 ‘노벨상 프로젝트’를 추진했으나 풀뿌리 연구를 고사시킨다는 비판을 받았다.


연구자들이 연구비를 딸 요량으로 정부 사업에만 몰려 연구의 생명인 자율성과 독창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이 밝힌 “한 분야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는 내용의 방향성은 옳다는 평가다 많다.


하지만 현행 3년짜리 ‘신진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겨우 5년으로 늘리고, 명칭만 ‘넥스트 디케이드 100’으로 바꾸는 식으로는 노벨상이 나오기 힘들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부에선 회의론도 제기된다. 연구 환경개선과 함께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정책의 연속성이기 때문이다. 실제 5년마다 정권이 바뀌면서 정부조직은 요동친다.


한 정치권 인사는 “대통령이 단기성과에 연연하지 않는다면서 굳이 ‘창조경제 실현’을 강조한다면 정권이 바뀔 경우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 관계자는 “박근혜정부 들어 미래창조과학부 신설을 시작으로 최근 과학기술전략본부 설치 등 조직개편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이뤄진다. 연속성이 생길리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언제에 초점이 맞춰지면 결과와 성과에만 매몰된다. 정권이 바뀌면 흐지부지될 게 뻔하다”면서 “경제적 이득에만 집착하지 말고 장기적 관점에서 풀뿌리 연구 활성화 기반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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