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공인을 받지 않은 민간자격증이 넘쳐나고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급증하기 시작한 민간자격 중에는 국민의 건강, 생명과 직결된 자격증도 적지 않아 의료법 위반 사례가 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의료계와의 물리적 충돌로 비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400여종에 달한다는 국가 비공인 민간자격증의 문제점을 점검한다.
[편집자주][상]민간자격의 반란…이젠 병의원 감시자 '자임'[하]팔짱 긴 정부, 피해는 국민 몫…교통정리 시급 척추교정지압요법(카이로프랙틱) 연수과정을 운영하는 한 협회 홈페이지에는 “카이로프랙틱은 21세기를 대비하는 독특한 대체요법으로 매우 유망시 되는 직종”이라며 “인체구조 및 기능과의 관계에 중점은 둔 건강치료과학이자 치료술로서 주로 신경근육, 골격조직에서 다루어지는 치료방법을 다루는 학문”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 협회의 카이로프랙틱 3개월 기본과정은 임상해부학, 척추해부학, 방사선학, 정형검사법, 교정테크닉 등 의대 교과과정과 유사한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으며, 강의는 30여년간의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한 강사 등이 맡고 있다고 소개했다.
세미퍼머넌트(반영구화장) 민간자격을 부여하는 협회는 최근부터 병의원에서 반영구화장 시술을 받은 후 부작용이 발생한 사례를 제보 받을 정도로 의료계에 역공세를 펴며 이미 우리 사회 깊숙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 협회는 반영구화장이 문신행위와 유사해 의료행위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면서도 배우고 가르치는 ‘교습행위’ 자체는 현행법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교묘히 수강생을 모집중이다.
피부미용관리사도 화장품과 미용기기를 이용해 얼굴 피부 미용관리, 전신 피부 미용관리 등을 하고 있어 피부과와 유사한 업무 행태를 띠고 있다.
또다른 피부미용협회는 매년 피부관리 학술연구와 임상발표회를 열어 임상사례를 공유할 예정이다.
이밖에도 발마사지사를 비롯해 각종 치료사, 스포츠마사지사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의료업과 유사한 민간자격자들이 영업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가격기본법상 민간자격은 국가 이외의 법인이나 단체, 개인 등 누구든지 신설해 관리ㆍ운영할 수 있다.
다만 국민의 생명ㆍ건강과 관련되거나 고도의 윤리성이 요구되는 분야는 민간자격대상에서 제한하고 있지만 통제불능 상태에 직면해 있다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주무부서인 교육부도 “민간자격에 대한 규제가 전무해 자격남발과 허위과장 광고로 인한 소비자의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고 인정할 정도다.
각종 민간자격증이 급증하면서 갈등도 표면화되고 있다.
피부과, 성형외과, 가정의학과 등의 개원의협의회장이 참여하는 대한임상반영구화장협회는 민간자격을 부여하는 한국세미퍼머넌트메이크업협회가 올해 하반기 국내에서 국제 학술대회를 개최하려 하자 의료법 위반으로 규정, 강력 대응했다.
카이로프랙터 민간자격 역시 의협의 반대에 부딛힌 바 있으며, 수지침을 보급하는 고려수지침요법학회는 지난 2002년 수지침요법사시험을 시행하려 하자 보건복지부와 한의계에 반발에 직면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일부 무자격자에 의한 불법진료행위가 증가하고 있지만 단속은 미미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한나라당 고경화 의원에게 제출한 국감자료에 따르면 2001년부터 올 6월까지 비의료인이 불법진료행위를 하다 적발된 건수는 118건에 불과하다.
복지부는 대표적인 불법진료행위로 문신이나 침 시술, 피부박피술, 피부관리, 체지방 측정 등이 꼽히고 있지만 의료계는 이런 적발건수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심각한 문제는 민간자격의 타당성과 영업범위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자 민간자격 인정 단체들이 영업 근거를 마련할 개별법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미퍼머넌트 민간자격을 부여하는 한 협회는 “반영구화장 기법이 국내에서도 대중화가 되어가고 수요는 증가하고 있지만 관련 법규가 부재해 여러 가지 제약을 받고 있다”면서 “새로운 법을 제정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한국피부관리사협회도 전문피부관리사 법제화를 촉구하는 전국 집회를 열면서 정부를 압박해 오고 있다.
또 일부 단체들은 민간자격을 국가공인 자격화하기 위해 치열한 로비전을 펴고 있는 상태다.
반면 교육인적자원부는 이들 민간자격증의 문제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함에 따라 정기국회에서 자격기본법을 개정, 2006년부터 민간자격증에 대해 대대적인 정비에 들어갈 예정이어서 갈등이 불가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