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 포괄수가제 확대 시행을 막기 위해 ‘수술 연기’라는 초강수 카드까지 꺼내들었던 의료계가 결국 제도 실시 이틀을 앞두고 전격 받아들이기로 했다. 비록 잠정 합의지만 밖으로는 국민을 위시한 여론과 안으로는 회원 설득에 적지 않은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의협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성인 남녀 1010명을 대상으로 포괄수가제 관련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51.1%가 포괄수가제를, 23.3%가 행위별 수가제를 선호한다고 응답했다. 또 정부 방침대로 7월에 시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50.7%, 미루자는 응답자가 27.1%였다.
19대 국회 보건복지위 활동 예정 정몽준 의원 중재
29일 대한의사협회 동아홀에서 열린 포괄수가제와 관련 긴급 기자회견에서 의협은 포괄수가제 수용과 수술 연기 철회라는 결단을 내렸다.
이로써 격한 대립각을 세우며 극단적인 상황까지 치닫던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 물밑에서 의료계와 정몽준 의원은 수차례 접촉을 가지고 포괄수가제 대안 모색에 머리를 맞댄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간담회 직후 정몽준 의원은 거듭 “정부의 책임도 크다”고 언급했다.
정 의원은 “감사원으로부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구성의 객관성과 공정성에 대한 문제 지적은 2004년에 이뤄졌다”면서 “그러나 무려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에 대한 시정 조치가 없었다는 것은 그 어떠한 이유를 대더라도 정부는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만약 정부가 시정 조치를 빠르게 했더라면 오늘날 의사들의 극한 반발까지 사며 수술 연기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의료계에 공감 의사를 표하고 “반드시 건정심 구조를 개선하는데 정치권에서 적극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피력했다.
노환규 회장 "저지하지 못해 죄송"…내부 비판론 불거질듯
기자회견 내내 노환규 회장에게서는 아쉬움의 표정이 역력히 묻어났다. 노환규 회장은 “포괄수가제를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는 사명을 지키기 위해 회원들이 보여준 용기있는 결정에도 이를 막아내지 못해 죄송하다”며 “다만 안과의사회 임시총회에서 일주일 이상의 수술 연기 결정에 90%의 회원들이 손을 들어준 것을 반드시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 같은 결정이 알려지자 적지 않은 회원들이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서울 소재 한 개원의는 “이번 포괄수가제 저지도 흐지부지 끝나는 것인가”라면서 “성금 모금과 대국민 여론조사 등 그 동안 기울였던 노력이 아무 의미없게 되는 것 같아 허탈하기 그지없다”고 성토했다.
또 다른 개원의는 “정몽준 의원, 한 정치인이 건정심 제도의 문제점을 ‘이해’한 것이 건정심 개혁을 담보하지는 않는다”면서 “갑자기 정몽준 의원이 중재에 나서 ‘선언문’ 형식으로 수술 연기라는 중차대한 결정을 뒤집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의협 "건정심 탈퇴 예정대로-포괄수가제 개선협의체 구성 노력"
오늘(30일) 1000여 명의 의사들이 집결할 ‘전국의사대표자대회’가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될 지 관심이 모아진다. 당초 이 대회는 포괄수가제 저지를 위한 수순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전격 수용으로 인한 일정 부분 전략, 전술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노환규 회장은 “달라진 것은 없다”면서 “수술 연기는 철회했지만 여전히 포괄수가제 확대 적용을 반대하기 위한 목소리는 계속해서 낼 것이며 무엇보다 건정심 탈퇴에 대한 생각은 전혀 변함이 없다”고 못 박았다.
의협 입장에서는 여당 7선 의원으로 제19대 국회에서 보건복지위원으로 활동할 정몽준 의원이 이 법에 대한 개정안을 개원 직후 첫 발의안으로 낼 것으로 보고 있어 여기에 사활을 걸겠다는 복안이다.
노 회장은 “비현실적인 포괄수가를 현실적으로 개선하고 의료의 질 하락을 방지할 수 있는 보완책을 마련하기 위해 포괄수가제 개선협의체를 즉각 구성하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포괄수가제 저지에 많은 희망을 걸었던 회원들의 비난 여론이 제기되고 있어 노환규 집행부가 내부 결속을 어떠한 방법으로 이뤄낼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