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한 산부인과, 답도 길도 없어요'
김장흡 신임 이사장, 초음파·DRG·전공의 등 현실 토로
2013.11.05 20:00 댓글쓰기

불과 10여 년 전 얘기다. 밀려드는 제자들을 선별해야 하는 행복한 고민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웬만한 성적으로는 감히 넘보지 못했다. 선배들의 삶을 반추하면 앞날 걱정 또한 없어 보였다. 그렇게 잘 나가던 산부인과가 최근 깊은 시름에 빠졌다. 각종 의료정책의 최대 희생양이 되면서 전공의 발길이 끊긴지 오래고, 문을 닫는 병원들이 속출하고 있다. 세상을 향해 작금의 상황을 하소연 해 보지만 어느 누구 하나 속시원한 답을 주는 이 없다. 그럼에도 산부인과를 옥죄는 수 많은 정책들이 아직 진행형이다. 난파 직전의 상황에서 조타기를 잡은 대한산부인과학회 김장흡 이사장 역시 깊은 한 숨으로 취임 소감을 대신했다. 하지만 “이대로 좌초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난국 타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끝나지 않은 DRG 악몽

 

산부인과가 직면한 최대 현안은 DRG(포괄수가제)다. 산부인과 의사들의 우려는 DRG 시행으로 인한 수입 감소에만 국한돼 있는게 아니다.

 

김장흡 이사장은 이를 선택과 집중의 폐해라고 지적했다. 의사가 환자를 위한 최선의 진료에 집중하지 못하고 비용문제를 고민하도록 강요받고 있는 현실에 대한 개탄이다.

 

실제 현행 DRG는 자궁과 부속기 등 이분법적 분류체계를 적용, 난이도는 물론 환자 상태와 무관하게 일률적인 수가를 책정하고 있다.

 

그는 “세계적으로 이런 방식을 취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라며 “앞으로 학회는 의사가 지식과 경험에 기반해 최선의 진료를 시행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를 위해 산부인과학회는 포괄수가제 TFT를 꾸리고 원가분석부터 행위분류까지 전방위에 거쳐 대책 마련에 착수한 상태다.

 

지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1년의 시간을 벌어놓은 만큼 남은 기간 동안 철저한 준비를 통해 회원들의 우려를 덜어주겠다는 의지다.

 

김장흡 이사장은 “DRG는 결과적으로 의사 보다 환자에게 안타까운 제도”라며 “의사가 돈을 걱정하는 현실에서 최선의 진료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초음파’

 

초음파 역시 산부인과의 고충을 가중시키고 있다. 현재 고시된 수가는 기존 관행수가의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특히 초음파 사용률이 높은 산부인과의 고민이 크다.

 

정부는 보장성 강화 일환으로 초음파 급여화를 단행했지만 산부인과 진료 일선에서 느끼는 고충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김장흡 이사장은 “요즘 산모들은 초음파를 하지 않으면 제대로 진료를 보지 않은 것으로 인식하는 탓에 산부인과들은 저수가를 감수하고 초음파를 시행한다”고 털어놨다.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중증도가 높은 환자가 많아 현재 수가대로라면 초소한의 인력, 공간, 전자사진 보관 시스템 유지도 어려울 것이란 우려다.

 

무엇보다 산부인과 영역에서 초음파검사 횟수 제한을 두면 임신중독증, 전치태반, 쌍태아임신 등 고위험 임신 관리는 물론 주산기 예후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김장흡 이사장은 “현행 수가로는 출혈환자나 통증을 주소로 추적 관찰하는 경우 검사가 복 시행될수록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제자가 그리운 스승들

 

2004년 211명이었던 산부인과 전공의는 2013년 117명으로 50% 감소했다. 배출되는 전문의 수 역시 계속 줄어 2014년에는 100명도 되지 않을 것으로 학회는 예상했다.

 

이는 전공의들이 어려움에 처한 산부인과를 외면한 탓으로, 전공의들의 발길은 해가 다르게 줄어들고 있어 국가적 문제로까지 여겨지는 상황에 놓여 있다.

 

전공의 지원률 감소는 곧 전공의 근무 여건 악화로 이어진다. 이 상태로라면 최근 추진되고 주 80시간 근무는 산부인과에서는 요원한 얘기일 수 밖에 없다.

 

실제 최근 대학병원 산부인과에서는 과다한 전공의 업무량 분담을 위해 교수들이 직접 당직을 서는 사태까지 일어나고 있다.

 

다행히 정부가 산부인과 의사 수급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 이웃나라 일본의 지원책 연구를 진행중이기는 하지만 시행 시점은 장담할 수 없다.

 

결국 산부인과 의사들은 제자들의 발길이 끊긴 분만장을 기약없이 지켜내야 하는 상황이다.

 

김장흡 이사장은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결국 산부인과는 붕괴될 수 밖에 없다”며 “당면한 문제 해결을 위해 학회 차원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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