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2013년을 하루 남겨두고 철도파업은 종료됐지만 새해를 맞이함과 동시에 대한의사협회를 주축으로 한 의사들의 파업 소식이 들려온다.
역대 최장 기간 진행된 철도파업을 두고 여론이 악화될대로 악화된 시점에서 의사들까지 파업에 돌입해선 안된다는 일부의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의협은 총파업 출정식을 갖고 투쟁 방식과 방향을 결정지기로 했다.
지난달 15일, 유독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도 여의도서 열린 전국의사 궐기대회에 발길을 옮겼던 2만여 명 의사들은 분을 삭이지 못해 부산에서, 광주에서, 제주도에서 한걸음에 달려왔다고 했다.
의약분업 저지 대정부 투쟁 이후 전국 규모의 궐기대회가 열렸던 것은 13년 만이다. 그들의 뜻이 실제 파업으로 이어질 지 주목되는 이유다.
13년 만에 이들이 궐기대회를 찾은 것은 ‘원격의료’가 도화선이 됐다. 원격의료 허용을 골자로 한 의료법 개정안을 원점으로 되돌리기 위해 대한의사협회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가동시켰고 20여 개 각 과 개원의협의회들도 잇따라 일어섰다.
의협은 치협, 약사회, 한의협, 간협과도 공동 노선을 구축했다. 보건의료노조와의 연대는 많은 것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대정부 투쟁에 대한 분위기는 무르익었고 투쟁 동력을 확보하는데도 일단 성공했다.
이번 전국의사 궐기대회는 이례적으로 국민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으레 ‘의사들의 파업’이라고 하면 줄곧 날선 비난만 해왔던 이들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듯 했다. 언론도 예외적으로 비판의 수위를 낮추는 분위기다.
그런데 느닷없이 ‘의료민영화가 되면 맹장수술이 1500만원에 이를 것이다’, ‘병원비가 폭등해 아파도 병원에 못 간다’는 식의 괴담이 나왔다. 정부가 최근 보건·의료산업 투자활성화를 위해 병원이 수익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 의료민영화의 전초전이 아니냐는 논란이다.
급기야 2만 여명의 의사들이 결집한 전국의사 궐기대회는 ‘의료민영화 반대 집회’로 인식되고 말았다. 당혹스러운 것은 궐기대회에 참석한 의사들. 대정부 투쟁의 초점이 의료민영화로 옮겨지고 있는 것 아니냐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민주의사회는 “궐기대회가 의료민영화 반대 집회로 보도되며 투쟁의 본질이 왜곡되는 것 아니냐”며 “실제 회원들은 영리병원과 의료민영화에 대한 설익은 반대가 아니다”라며 의협 행보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를 의식한 듯 노환규 회장은 “궐기대회에서 의료민영화라는 단어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날 부터 의협이 주도적으로 의료민영화 반대 시위를 한 것처럼 보도된 것이다. 다만, 의료기관이 이윤만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의료민영화를 거부한다”고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여기에 이번 대정부 투쟁에 돌입한다 해도 전 회원들의 의견을 물어 추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럼에도 대정부 투쟁을 바라보는 상당수 의사들의 우려에 비해서는 미흡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의료민영화가 바른 표현이든, 잘못된 표현이든, 현실화될 가능성이 낮든, 높든 의료계의 외침을 알릴 불쏘시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전국 의사들이 먼 길도 마다하고 여의도에 뛰쳐나온 데는 당장 도입될 원격의료를 저지하기 위한 ‘목표’가 컸기 때문이다.
실제 궐기대회에 참석한 부산 소재 소아과 원장은 “정부가 말하는 ‘선시행, 후보완’은 절대 있을 수 없다. 원격의료가 실시되면 남아있는 동네의원들 역시 줄도산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격의료 허용 의료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개원가, 대학병원 간 온도차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의협이 목표를 확실히 설정해야만 대학병원 교수들과 전공의들의 참여도 이끌어낼 수 있다.
악재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의 파업이 명분을 얻고 성공적으로 끝나려면 동네병원 의사들의 결집만으로는 힘들다. 파업을 포함해 대정부 투쟁에 나서는 의사들 자체가 이번 투쟁에 대해 깊이 공감하지 않는다면 이들이 말하는 개혁은 저만치 떨어져 있을 수 밖에 없다.
총파업이 정작 동력을 얻지 못한 채 반쪽짜리로 그친다면 철도파업보다 더한 여론 악화 위기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오는 11일 출정식에서는 대정부 투쟁의 방향과 의사들의 목표가 한 군데로 모아질지 추이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