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확대가 지역·필수의료 확충의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현재 의사 양성 교육 과정이 얼마나 일관성 있게 이뤄지고 있는지, 대학들 역량과 의지에 대한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는 의학교육계 지적이 제기됐다.
아울러 현장에서 수험생들과 만나는 교사들도 의대 정원 확대가 가져올 사교육 조장, 수도권 의대 쏠림, N수생 증가, 이공계 인재 블랙홀 등 연쇄적 부작용에 대한 정책적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는 제언을 내놨다.
4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신현영 의원(더불어민주당)과 민주당 보건의료특별위원회가 공동주최한 ‘의대 정원 확대 연속토론회 1차 : 입시지형 변화·요동치는 수험생 사교육 문제 진단’이 열렸다.
신현영 의원은 “직접 서울과학고 자퇴 파동 1세대를 경험하고, 서남의대 폐교 전 마지막 임용자였다”며 “학생들이 원광대·전북대로 찢어지면서 불행한 경험을 한 것을 목격한 입장이다. 의대 정원 확대는 여러 문제들을 정돈하면서 가야 한다”고 취지를 밝혔다.
“의대 정원이 필수의료 낙수효과? 개원 옵션 있는 한 가능성 없어”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교육 전문가들은 의대 정원 확대에 앞서 해결 또는 병행해야 하는 과제를 실제 학생들과 호흡하고 있는 입장에서 진단했다.
울산의대 입학사정관으로 활동해온 고경남 교수(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는 “의대 증원의 효과는 10년 뒤에 나타나지만 과도한 의대 증원의 부작용은 당장 나타날 수 있다”며 “지금 해결할 수 없는 것을 나중에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느냐”고 꼬집었다.
그는 현재 소아청소년과를 비롯한 기피과들이 의대 증원으로 인한 낙수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데 의구심을 표했다.
고 교수에 따르면 근래 전문의를 따지 않는 인턴이 상당하다. 고 교수는 “서울아산병원의 피부과 교수가 7명이 채 되지 않는데 동네 피부미용클리닉에는 의사가 7명 있다”며 “전문의를 따지 않더라도 일반의로 개업하는 옵션이 있기 때문에 필수의료로 어떻게 밀려온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일침했다.
실제 금년 하반기 전공의 추가모집 지원현황을 보면 ▲산부인과 52명 중 4명 ▲응급의학과 40명 중 3명 ▲외과 72명 중 5명 ▲심장혈관흉부외과 30명 중 1명 ▲소아청소년과 143명 중 4명 등만 지원했다.
이에 고 교수는 “증원은 필수의료 환경 개선과 병행해야 하고, 이공계 공동화 현상에 대한 대책은 당장 필요하다”며 “대학들의 의사 양성에 대한 역량과 의지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고교-의대-전공의 교육과정 연계 부족, 의사로서 동기부여 받을 수 있나”
문호진 사교육걱정없는 세상 연구원(의사)는 의사 양성을 생애주기 관점에서 접근, 의사가 되기 위해 학생들이 겪어야 하는 교육 과정을 연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중고교 교육, 의대 선발, 기초의학 교육, 임상 교육, 전공의 교육·수련 등이 전혀 연계가 없어 각 단계의 성과가 다음 단계로 이어지기 어렵다”며 “학생들이 동기를 부여받기 힘들고 입시가 지나치게 중요한 변곡으로 작용하니 이후 단계 학습은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일례로 중고교 시절에는 수학·과학 교과학습을 하며 의과학자 지망생이 많지만, 선발 과정에서는 수능·내신 성적과 의대 커리큘럼의 연계가 부족해 사교육 중심 대비가 흔하다. 또 전공의 선발 과정에서는 의대 성적·의사 국시를 비롯해 본과 1~2학년 성적이 관건인 인턴성적이 좌우한다.
이에 문호진 연구원은 “현장에서 필요한 것과 선발과정에서 학습·훈련하는 내용이 불일치한다”며 “각 단계 연계가 안 되다 보니 학생이 본인 미래상을 설정하기 어렵고 막대한 비용을 소모하면서도 현장에서 요구되는 역량을 갖추기 어려운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의대 정시 비율, 지역인재 전형 비율 등 현행 제도는 유지하면서 의대 정원만 늘릴 경우 현재 입시의 악순환도 무한 굴레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EBS진학위원인 윤윤구 강사(서울 한대부고 사회탐구 교사)는 “정시 선발 40%를 유지하면 의대 준비 수험생이 수시에서 수도권 의대에 도전하고 정시로 지방의대에 합격한 이후 N수를 준비하고, 재학생이 재수로 몰린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에 의대를 꿈꾸는 누적인원이 폭증할 수밖에 없다”며 “서울 소재 의대 졸업생은 29%인데 서울 소재 병원에 간 학생 비중은 57%다. 지방 학생 흡입 요인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