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도’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논의의 시작은 ‘보상재원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으나, 토론과정에서 ‘의료기관을 분담 주체에서 배제시켜야한다’, ‘제도 자체를 아예 폐지시켜야 한다’는 등의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관에서는 보건사회연구원 주최로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사업의 효율적 재원 운영 방안’을 주제로 한 정책토론회가 개최됐다.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도란, 보건의료인이 충분한 주의의무를 다했음에도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해 국가와 의료기관이 협력해 분쟁을 해결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분만 과정에서 발생한 뇌성마비 ▲분만 과정에서 발생한 산모 또는 신생아의 사망을 보상 대상으로 두고 있는데, 제도 도입초기부터 ‘분담 주체’와 ‘분담 비율’등을 놓고 의료계와 정부·국회 등의 마찰이 컸다.
초기에는 국가와 의료기관 개설자 분담비율이 5대5였다가 규제개혁위원회 심사에서 분만기관 급감, 산부인과 기피 등 분만의료기관들이 겪는 어려움이 고려돼 7대3(국가70%, 의료기관 30%)으로 조정됐다.
하지만 현행 비율은 일몰제로 내년 4월 8일까지 적절성 검토가 이뤄져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보건사회연구원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발주한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사업의 효율적 재원운영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이며, 이번 연구 결과를 비롯해 토론회에서 나온 의견들이 복지부의 제도 개선에 반영될 예정이다.
보사硏 "70대30 비율 유지하되 탄력 운영 필요"
이날 보건사회연구원 윤강재 부연구위원은 “객관적이고 계량적인 분담 비율 산출이 불가능한 한계가 있으나 역설적으로 현행 비율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분담비율을 조정할 경우 타당한 사유를 제시하는 데 한계가 있을뿐더러, 제도 안전성 확보와 기존 납부자와의 형평성을 유지하는 측면에서 현행 유지가 타당하다’는 게 요지다.
그는 “풍수해보험이나 농작물재해보험, 가축재해보험 등 정부가 지원하는 정책보험 보험료 분담비율 역시 70%가 최대선”이라고 설명했다.
▲의원급 분만산부인과에 대해서는 국가 분담비율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병원급 이상은 현행 비율을 유지하는 방안 ▲의료기관 분담금을 고정하고 재정상황에 따라 정부출연금 비중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방안 ▲중장기적으로 의료기관의 제도참여를 자율화하는 방안 등이 제시됐다.
윤 연구위원은 ‘의원급 분만산부인과에 대해 국가 분담비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되, 병원급 이상은 현행을 유지하는 방안’에 초점을 뒀다.
분담금 재원 운영 방식을 ‘책임준비금을 설정한 재정기반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대안도 제시했다.
현재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재원은 2014년 7월말 현재 약 24억5000만원이 적립, 보상금 집행 후 약 22억6000만원이 쌓여있는 상황이다.
재원의 30%를 부담해야 하는 병의원의 분담금 납부율은 70% 수준으로, 병원과 의원의 분담금 납부율은 각각 62%, 66%대다.
윤 연구위원은 “현재는 대상 발생건수 추계를 통해 적립목표액을 설정한 뒤 참여자분담비율에 따라 부과하는 방식인데, 적립액이 일정 비율 이하로 낮아지는 지점을 설정해 지출하도록 하고 재원운영 안정성 확보를 위한 책임준비금 방식을 도입해야한다”고 밝혔다.
의료계 "말그대로 ‘불가항력’…의료기관 아닌 국가 100% 부담돼야"
하지만, 제도 자체에 대한 비판과 반발이 이어졌다. 일본의 보상제도처럼 국가가 100% 부담하는 ‘완전국가부담 방식’으로 가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소윤 연세대 의과대학 의료법윤리학 교수는 “완전국가부담 방식을 지지한다”면서 “일본의 경우 산모들이 보험료를 내는데, 출산에 문제가 없으면 출산 축하금에 더해서 주고 뇌성마비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국가가 결론적으로 다 부담해준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본래 제도 도입 취지는 산부인과 의사가 줄어들고 취약지역에 분만시설이 없어지는 상황에서 산부인과 의사의 기를 살려주고 안심토록 제도화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제도에 협조하지 않는 상태가 되면서 안하느니만 못하게 됐다. 우리 사회가 같이 논의해야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당초 제도를 시행하려는 의료분쟁조정원 입장에서는 의료인이 완전히 돈을 안내게 하면 안 된다는 논리를 갖고 있었는데, 지금 다시 돌이켜봐도 잘못된 결정이다. 이런 연구를 할 수 없다고 강하게 말리지 않은 게 후회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이충훈 수석부회장도 “법 자체가 산부인과의사회 등 의료계의 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는 내용으로 날치기 통과됐었다”면서 “의료기관에 대한 보상 재원 분담 자체를 폐기해야지 현 비율을 유지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의사에게 과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의료인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이유를 들면서 제도를 만들더니 이제는 돈이 남아서 어떻게 해야할 지 논의하고 있다”며 “답답하다”고 피력했다.
서울아산병원 김암 산부인과 교수도 “분만을 받는 산부인과들을 분담금 명목으로 부담하게 하는 것이 타당한지 다시 생각해봐야한다”면서 “분만은 시시각각 변화무쌍하다. 불가항력적인 부분까지 책임을 묻는 처사는 타당치 않다”고 지적했다.
환자단체연합회도 ‘제도 폐지’를 주장했다.
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우리도 이 제도에 반대한다.이 제도를 우리나라 국민 중에서 요구한 사람이 없다. 굳이 연구할 필요도 없다”고 밝혔다.
안 대표는 "3년 동안 10건 정도의 보상금 지급만 이뤄져왔는데 건설적인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오히려 관련법에다가 출산 부분에 대해 100% 국가가 부담하는 것을 추가하면 되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그는 “만들어진 제도니까 잘 활용하려면 보상금을 늘리거나 불가항력의료사고에 대해서는 자동개시를 하고 보상한도를 최소 5000만원으로 상향조정 하는 등의 방안도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