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이 대거 개원가로 몰리면서 의사 인력시장은 물론 급여도 출렁이고 있다. 특히 공급이 수요를 넘어 선 기형적 상황에 개원가는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특히 만성적 의사인력난을 호소하던 중소병원들도 의정사태 이후 밀려드는 지원서에 표정 관리 중이다. 부족한 인력에 신음하고 있는 대학병원들과는 확연히 대조된 모습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사직 전공의 대다수는 현재 진행 중인 하반기 수련병원 충원에 지원하는 대신 다른 진로를 모색 중이다.
이번 의정사태로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 1만3531명 중 사직 처리된 인원은 7648명이다. 정부는 이들의 복귀를 위해 특례까지 적용했지만, 전공의 대부분은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다.
전공의들은 수련병원 대신 주로 피부·미용 관련 개원가나 건강검진센터, 요양병원 등으로 향하고 있다.
아직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지 못한 상황인 만큼 중도에 수련을 포기하고 나온 ‘일반의’ 신분의 전공의들이 택할 수 있는 자리에 쏠림이 심한 상황이다.
아예 취업을 포기한 이들은 군 입대나 해외 유학 등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다.
사직 전공의들이 동시다발로 인력시장에 쏟아져 나오면서 구직 경쟁은 치열해지고, 급여는 확연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개원가에 따르면 통상 피부미용 의료기관 봉직의 월급은 1000만원 정도로 형성돼 있었지만 최근 전공의 지원자가 넘쳐나면서 급여가 반토막 났다.
의사 커뮤니티에는 ‘500만원만 받고 일하려 해도 자리가 없다’, ‘여기저기 이력서를 냈지만 연락 오는 곳이 없다’ 등 젊은의사들의 푸념이 올라오고 있는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단순한 문진(問診)을 수행하는 건강검진센터, 학교 출장검진 현장에도 젊은의사들의 지원이 몰리면서 자연스레 급여 수준도 내려가는 중이다.
갑작스런 구직난에 그동안 젊은의사들이 선호하지 않던 요양병원에도 지원자가 넘치고 있다.
A요양병원 원장은 “공식적으로 접수되는 이력서 외에도 인맥을 통한 채용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며 “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기현상”이라고 말했다.
중소병원들도 쇄도하는 지원서로 표정관리 중이다. 다만 지원자 대부분이 전문의 자격이 없는 만큼 일선 진료현장 투입 보다는 야간 당직 위주로 채용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소병원 입장에서는 젊은의사들이 내년 3월이나 9월 전공의 모집전형 시기에 떠날 공산이 큰 만큼 정식 채용이 아닌 아르바이트 형태로 제안하고 있는 상황이다.
B중소병원 원장은 “전에는 당직 전담 의사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었지만 요즘은 골라서 선택하는 상황”이라며 “지원자가 먼저 급여 인하를 조건으로 제시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기현상이 얼마나 지속될지 모를 일”이라며 “다만 일반의가 대부분이다 보니 정작 전문 진료과목 충원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젊은의사들의 구직난은 이미 심각한 상황이다. 실제 대한전공의협의회 박단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황규석 서울시의사회장에게 “사직 전공의 취업을 도와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서울시의사회는 25개 구회장단과 함께 사직 전공의들 면담을 진행하는 한편 이들을 위한 구인·구직 사이트를 구축 중이다.
C개원의는 “한참 수련을 받아야할 전공의들이 당장 돈을 벌기 위해 개원가로 쏟아져 나오는 현실이 개탄스럽다”며 “제자리로 복귀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