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국내 바이오산업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주주뿐만 아니라 업계 내부에서도 좀처럼 반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감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특히 올 상반기 확실한 기술력으로 기대를 모았던 바이오벤처들이 잇따라 난항을 겪으면서 바이오 업계의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큐로셀과 에이프릴바이오가 대표적 사례다. 두 기업은 기술력과 사업성 면에서 우수성을 인정받았지만 주식시장 상장에 어려움을 겪었다.
큐로셀은 ‘원샷 항암제’로 불리는 CAR-T 개발 기업 중 유일하게 임상 1상을 완료했음에 기술성 평가에서 고배를 마셨다. 당시 업계에서도 의아하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에이프릴바이오 또한 올 상반기 상장 과정에서 암초에 부딪힌 바 있다. 지난해 10월 덴마크 제약사 ‘룬드벡’과 4억4800만달러(약 5795억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하며 성공가도를 달리는 듯 했지만 올해 4월 코스닥 상장 예비심사에서 고배를 마셨다.
물론 에이프릴바이오는 자료 보완을 통해 한 달 후 예비심사를 통과했다. 하지만 가시적 성과를 낸 기업도 상장에서 부침을 겪는다는 사실만으로도 국내 바이오 업계가 위기라는 점을 짐작케 했다.
상장 예비심사를 통과해도 문제였다. 보로노이의 경우 지난 8~9일 국내외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 진행 결과 공모가가 희망밴드(4만~4만6000원)의 최하단인 4만원으로 확정됐다.
보로노이는 지난 3월 코스닥 상장 자진철회 후 3개월 만에 재도전하는 상황이었다. 두 번째 도전에서는 희망 공모가를 20% 가량 낮췄는데, 최저가로 공모를 마감해야 했다.
이어 진행된 일반투자자 공모에서도 경쟁률 5.57대 1을 기록하는 데에 그쳤다.
한 상장 바이오기업 관계자는 “최근 주식시장 상황이 좋지 않고, 바이오 업계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신이 팽배해 있다”며 “좋은 결과를 내도 주가에 긍정적으로 반영되질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업계에서는 이런 바이오산업에 대한 불신의 원인이 ‘파이프라인’에 있다고 분석한다. 정확히 말하면 ‘단일’ 파이프라인이 그 원인이다.
바이오기업들은 대부분 단일 파이프라인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하나의 신약 후보물질을 여러 적응증에 적용하는 식으로 주주들을 끌어모으고 주가를 유지하는 행태가 여전하다.
업계는 영세한 기업 여건상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른 바이오기업 관계자는 “후보물질 하나를 발굴하는 데 엄청난 비용이 필요하다”며 “임상까지 들어가면 비용은 더욱 커진다. 기업 입장에서는 여러 파이프라인 확보는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미봉책은 장기적으로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앞서 큐로셀과 에이프릴바이오도 단일 파이프라인 의존 구도가 심사에 악영향을 미친 바 있다.
물의를 일으켜 상폐 위기에 놓인 신라젠과 코오롱티슈진도 재심사에서 각각 펙사백과 인보사 등 단일 파이프라인에 의존하는 구도가 발목을 잡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단일 파이프라인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크다는 점을 방증한다.
위기일수록 기본이 중요하다. 투자를 통해 연구역량을 강화하고,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확보해 기술성을 입증하는 게 바이오기업의 정도(正道)다.
이번 위기를 계기로 바이오 업계에 상장의 달콤함보다 바이오기업으로서의 정체성 확립을 먼저 생각하는 문화가 자리 잡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