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이슬비 기자] 비대면 진료인 원격의료를 놓고 정부와 의·약계가 치열히 대립한 것은 오랜 일이다. 원격의료 관련 법은 만성질환자의 내원 고충 개선 등을 필요로 꾸준히 법안 발의가 시도됐지만 의·약계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초 코로나19가 발생한 후부터는 비대면 진료가 한시적으로 허용됐고 최근 김부겸 국무총리가 규제챌린지 과제에 원격의료를 포함시켜 다시 한 번 논쟁에 불이 붙었다. 원격의료는 물론 비 대면 약 처방·배달 등까지 허용되면 각종 부작용을 걷잡을 수 없어진다는 이유다. 한편, 비대면 진료의 한시적 허용 후 전화 처방이 3달 만에 56만건에 달하고 특정 약 배달 앱 이용 건수가 200만건을 넘는 등 이미 비대면 진료는 환자·소비자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강원도·대구 등 규제특구지역 내 관련 실증사업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기술 발전과 그 필요성으로 인해 원격의료를 무조건적으로 반대하기는 어렵다는 여론을 인식한 탓인지, 의·약계도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방향에서 1차 의료기관 중심으로 허용할 것을 주장하는 등 전과는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데일리메디가 원격의료를 둘러싼 정부와 의·약계 입장 및 원격의료 현황 등을 정리해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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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의료법 상 원격의료는 의료인 간만 허용되며 의사와 환자 간은 금지다.
비대면 진료라고도 부르는 원격의료 필요성은 고령 만성질환자의 내원 어려움 개선 등을 이유로 지난 2010년부터 꾸준히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의료계가 원격의료를 ‘의료 4대 악법(惡法)’에 포함하는 등 거세게 반발해 모두 무산된 바 있다.
그러나 지난해 1월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환자가 의료기관을 내원했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되는 경우를 방지하고 일부 의료기관이 집단감염 발병 등으로 폐쇄되며 생긴 의료공백 등을 해결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의료계 반대에도 2020년 2월 24일부터 비대면 진료를 한시 허용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평가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비대 면 진료를 한시적 허용 후 약 3개월 만인 지난해 6월까지 총 7031개 기관에서 전화상담 및 처방 56만건이 보고됐다.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전체 환자의 42%를 차지했으며 만성질 환 분야 전화상담·처방이 가장 많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15일부터는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반한 법률 제49조의3’이 신설, 적용되면서 이에 근거해 위기대응 ‘심각’ 단계 위기경보 발령기간 내 전화상담·처방이 가능해졌다. 감염병 위기경보 발령 단계는 ‘관심’·‘주의’·‘경계’·심각 순으로 상승한다.
정부, 금년 6월 원격의료 규제챌린지 추진
올해 6월 10일 열린 경제인 간담회에서 김부겸 국무총리는 “1차 규제챌린지 과제를 이달부터 본격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규제챌린지는 해외 주요 국가보다 더 낮거나 동등한 수준의 규제를 달성하는 목표로 하는 사업이다.
15개로 꾸려진 1차 과제에 비대면 진료 및 의약품 원격조제 규제 완화, 약 배달서비스 제한적 허용 등의 원격의료 내용이 포함되며 논란이 커졌다.
다음날인 6월 11일 대한의사협회는 성명서를 통해 "원격의료는 안전성·유효성이 입증되지 않은 만큼 오진 위험이 있고 환자 진단·치료를 지연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의협은 "지난 2020년 9월 보건복지부와 의료계가 참여하는 의정협의체를 통해 발전 방안을 논의키로 합의했는데 이번 규제챌린지 발표는 지난 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라며 “경제 논리에 매몰된 규제챌린지 추진 시도를 즉각 철회하라” 고 강조했다.
올해 초 신년사에서 최대집 전(前) 대한의사협회장이 “비대면 진료를 비롯한 4대악(惡) 의료정책을 철저하게 막아내겠다며 기존 입장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겠다”고 밝힌데 이어 여전 히 강경한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대한약사회도 가세했다. 약사회와 전국 16개시·도 약사회는 6월 15일 공동성명을 내고 "국민건강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 치를 챌린지 대상 규제로 분류하는 것은 보건의료정책에 대한 몰이해의 극치고, 국민 건강권을 담보로 일부 기업에 특혜를 주려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약 배달 추진 중단을 촉구했다.
약사회는 “의약품의 비대면 처방 시 오·남용 가능성을 배제 할 수 없고 ‘졸피뎀’ 등 성범죄에 악용되는 약물에 대한 무분별한 처방을 막을 방도가 없다”고 지적했다.
진료 및 약 배달 앱 이용 원격진료 211만건
원격의료 공론에 약 배달 사안이 포함되면서 의·약계 반발이 거세졌지만 이미 환자·소비자 사이에서는 한시 허용된 비대면 진료가 호응을 얻으며 자리잡는 추세다.
비대면 진료·약 배달 애플리케이션 ‘닥터나우’를 통한 원격진 료가 최근 211만건을 돌파했다.
닥터나우에 따르면 월평균 9만명이 이용했고 현재까지 10만회 이상 다운로드됐다. 2021년 6월 현재 약국 150여 곳과 제휴 중이다.
닥터나우 외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제공되는 ‘전화처방 엠디 톡’·‘최강닥터’·‘닥터콜’ 등의 비대면진료 앱도 각각 10만회, 1만회, 5000회 이상 다운로드됐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세계 원격의료 시장 규모는 2019년 307억달러(25조원)였다. 오는 2027년에는 752억달러(86조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우리나라도 강원도·대구 등의 규제자유특구 내 원격의료 사업을 적극적으로 육성 중이다.
이번 김부겸 총리의 규제챌린지 추진 계획에 대해 의료계가 “보건의료정책마저 규제챌린지 대상으로 삼는 경제 논리에 매몰된 발상”이라고 비판한 배경이다.
지난 2019년 7월 지정된 강원도 디지털 헬스케어 규제자유특구에서는 2020년 8월부터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 등산객 등 2000명을 대상으로 ‘건강관리 생체신호 모니터링’ 실증을 착수한바 있다.
특구사업자가 개발한 패치형 심전계를 가슴에 부착 후 등산로를 이동하면 심전도와 위치정보가 수집돼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원격모니터링센터에 전송되는 방식이다.
이를 포함해 만성질환자에게 원격모니터링·내원 안내·진 단·처방 등의 각종 실증사업도 수행 중이다. 참여한 만성질 환자는 현재까지 600명을 넘었다.
원격의료기기 개발 성과도 주목할 만 하다. 심전도 원격모니터링 실증에 참여한 벤처기업 메쥬의 패치형 심전계 ‘하이카디’가 지난 5월 25일 유럽 CE인증을 획득했다.
CE는 유럽연합 내 유통되는 제품의 안전·건강·환경 및 소 비자보호 관련 의무 규격으로, 특구사업에서 성능이 확인된 제품이 해외시장에 진출한 사례는 처음이다.
2019년 7월 지정된 대구 스마트웰니스 규제자유특구에서도 원격의료를 적극 수행 중이다.
경북대병원은 지난해 8월부터 총 142명의 신장이식 환자를 원격 모니터링해 혈압·혈당 등 생체정보를 수집하고 복약 알람 및 위험 관리 안내서비스를 제공하는 재택 임상시험을 실 증하고 있다.
한편, 중소기업벤처부는 오는 8월 특구사업이 종료됨에 따라 원격모니터링 등 실증사업의 임시허가 전환과 이에 필요한 의료법 개정을 위해 안전성 검증에 나섰다.
해당 사업들의 특구 외 전국 확대 사안을 놓고 중기부는 적극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복지부는 아직 검토 중이라는 신중한 입장을 내비쳤다.
"절대 반대" 의협도 기류 변화 수용 방안 모색
비대면진료 사안을 두고 ‘적극 추진’과 ‘절대 반대’라는 팽팽한 대결 양상은 최근 들어 누그러지고 있다.
원격의료 추진 방향이 산업화가 아니라 의료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 목적을 두고 나아가야 한다는 방향성에서 복지부와 의·약계가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앞서 심평원은 비대면 진료 관련 보고서 에서 “전화상담·처방이 ‘진료’로 좀더 명확한 조건을 규정하고 산업성·편의성 중심으로 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환자·소비자 단체도 의료취약지역 또는 중증장애인 등 거동 불편자를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허용하되, 시범사업을 통한 효과 평가 후 확대여부를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6월 24일 보건복지부는 제 15차 보건의료발전협의체 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는 의협 관계자 및 대한병원협회·대한치 과의사협회·대한한의사협회·약사회 관계자들이 참석해 비대면 진료 추진방향 등에 대한 논의를 가졌다.
의·약계는 “대면 진료가 원칙이고 이같은 원칙이 흔들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회적 요구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시기”라는 입장이다.
의협은 그간 원격의료에 강하게 반대했던 것과 달리 의료계와 공감대를 형성하며 관련 정책을 추진할 것을 제시했다.
비대면 진료 대상을 도서·벽지 등 의료 취약지 거주자나 만 성질환자와 거동이 불편한 노인·장애인 등에 한정하고 비대면 진료 제공기관은 1차 의료기관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부도 이날 “충분한 의견수렴을 통해 의료계 등과 공감대 를 형성하면서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환자와 의료기관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여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