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구교윤 기자]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상하고 있는 의료기기 분야로 진출하는 의사가 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4차 산업을 이끌어가는 핵심 기술이 의료 분야에 접목되면서 업체들은 기술 경쟁력을 위해 이른바 '의사 모시기'에 여념없는 모습이다.
의료기기 분야는 그동안 제약, 바이오 분야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의사 진출이 드물었다는 점에서 이 같은 변화가 더욱 주목된다.
일례로 가장 최근 파인헬스케어는 원격피부진료 모델 개발을 위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를 의학총괄책임자로 영입했다. 파인헬스케어는 향후 의료 전문성을 높이고 헬스케어에 특화한 마케팅 역량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의사 진출은 AI, 빅데이터 기술을 적용한 의료기기 생산 업체에서 활발하다.
대표적으로 AI 헬스케어 기업 루닛이 있다. 루닛은 지금까지 영입한 의사만 11명에 달한다. 전체 직원이 150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비율이다.
루닛 관계자는 “회사가 개발하는 AI 기술을 사용하는 소비자는 결국 의사다.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의사를 채용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AI 기술에 사용하는 의료데이터는 양과 질이 모두 중요한데, 양질의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서는 의사의 의학적인 전문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뷰노도 마찬가지다. AI 헬스케어 기업 뷰노는 현재 영상의학과, 내과, 병리과 전문의와 일반의를 포함해 전문인력 6명을 고용한 상태다.
뷰노 관계자는 “의료 AI는 의학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인데다 정확한 현장 니즈를 파악하고 제품 개발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의사를 영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병원과 의료기관과 협업, 질병 의학적 해석, 데이터 확보 및 가공, 제품 개발 등 다양한 영역 활약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 이 같은 추세는 비단 의료기기 업체만 해당되지 않는다.
올해 구글과 페이스북 등 글로벌 IT 기업들도 의사, 약사 등 의료 전문인력 모시기에 나선 상황이다. 최근 떠오르는 헬스케어 시장 진출을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삼성전자도 지난해 헬스팀을 구성하고 의사 3명을 채용한 바 있다. 네이버도 국내 로봇수술 대가인 나군호 전 세브란스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를 채용했다.
사내 복지에 개발 자문까지 의사 영입으로 일석이조
업계에서는 의사를 채용하면서 제품 연구개발을 비롯해 사내 복지까지 챙기는 1석2조 혜택을 누리고 있다.
실제 씨젠은 지난해 의사 2명을 영입한 상태다. 씨젠 관계자에 따르면 의사를 영입한 이유는 사내의원을 운영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달 출범한 ‘글로벌 의료사업 추진단’에 의사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하면서 사실상 의료사업에 의사를 첨병 역할로 활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헬스케어 기업 바디디프랜드도 정형외과, 신경외과, 내과, 정신과, 이비인후과, 치과 등 각 분야 전문의를 고용해 사내의원과 메디컬 R&D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바디프랜드 관계자는 “단순히 마사지 기능을 갖춘 안마의자에서 벗어나 의료 기술을 적용한 ‘메디컬 체어’를 위해 의사들이 직접 제품 연구개발에 참여하고 있다”며 “최근 IoT, AI 등 기술 고도화에 나서면서 의사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사들의 의료기기업계 진출이 활발해지는 이유에는 이른바 '후한 대접'도 적잖은 영향이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 관계자는 “의사가 고급인력인 만큼 채용할 경우 대부분 요구 조건을 맞춰주는 편이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기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의사 영입은 곧 ‘투자’라고 여기는 경향이 크다"고 강조했다.
실제 지난해 구글과 페이스북 의료분야 채용 공고를 보면 보건분야 연구 경력자 최소 연봉은 1억1000만 원을 웃도는 수준이다.
이밖에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성취감을 이룰 수 있다는 점도 매력으로 꼽힌다.
또 다른 관계자는 “평소 환자 진료를 하다 보면 연구에 투자할 여건이 열악하다 보니 연구를 좋아하는 분들이 이직을 많이 하는 편이다. 여기에 의료 기술을 개발해 더 많은 환자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하는 분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