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가 종식됐지만 여전히 병원들은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새다.
대한병원협회가 12일~13일까지 광화문 나인트리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된 병원경영 국제학술대회 'KHC 2015(Korea Healthcare Congress)'에서는 병원들의 신음이 새어나왔다.
이왕준 KHC 사무위원장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병원들은 메르스 이후 여전히 멘붕이다”라며 “최근 몇 년간 병원들 경영상황이 악화된 상황에서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메르스가 터지며 상황 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 사무위원장은 “메르스로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피해를 본 병원들에 대한 여러가지 보완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감염관리에 따른 수가, 인센티브 등이 어떻게 정해질지 전혀 예상이 되지 않고 있다”며 “의료현장의 감염관리 능력에 대한 요구도가 높아졌는데 이 것이 과연 긍정적으로 작용할지 더 상황을 열악하게 만들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메르스 사태와 같이 보건의료분야에 대해서는 정부의 일방향 정책을 펼치기 보다는 병원들과 수평적인 관계에서 협조하는 관계를 가져가야 한다는 주장이 공감대를 샀다.
병협 유인상 보험이사는 “메르스 사태의 원인을 단순히 병원에만 있다고 보고 규제적인 정책을 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부가 병원들이 겪고 있는 고충들을 수렴해 현장중심의 제도를 수립해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톨릭중앙의료원 강무일 원장 역시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보듯이 의료는 절대 시장경제논리에 맡겨서는 안 되는 분야”라며 “미국을 보더라도 정부와 미국병원협회가 협조하는 관계로 대응하지 상하관계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관계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강 원장은 “정부에서도 최근 협업을 강조하고 나섰는데 협업은 단순히 서로 돕는 관계가 아니라 보완해나가는 관계”라며 “이번 메르스 사태를 통해 병원과 정부가 상하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를 구축해 나가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실제 올해 초부터 해외연자 섭외 등 KHC가 준비됐지만 5월 말 메르스가 터지며 강연 주제도 절반 이상 메르스 이후 병원들의 대응에 관한 논의로 바뀌었다.
학술대회장 곳곳에서는 ‘메르스사태 이후 한국병원들 어디로 갈 것인가’, ‘메르스 사태 이후 병원 간호 어떻게 바꿔야 할 것인가’ 등 메르스 이후 감염관리에 대처하기 위한 병원들의 고민을 논의하는 세션이 진행됐다.
학술대회 참석인원이 지난해보다 10% 늘어난 이유도 메르스 이후 병원들이 처한 절박한 상황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이 병협의 설명이다.
병협 박상근 회장은 “메르스라는 뜻하지 않은 사태로 병원계는 많은 상처를 받았다”며 “이번 KHC는 의료기관에서의 환자안전, 감염관리 체계를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병협, 메르스 백서 발간…"집단감염 대응 의료체계 준비"
또한 병협은 메르스 발병부터 종식까지 70여일의 기록을 담은 백서인 ‘2015 메르스 대한병원협회의 기록’을 발간을 통해 집단감염 및 재난에 대응하는 의료체계를 만들어가겠다는 방향을 밝혔다.
200페이지 분량의 백서는 국내외 메르스 발생현황 보고와 정부‧국회‧병협 등의 각계 대응 활동 현황, 의료기관의 역할 등을 담고 있다.
박 회장은 “의료는 케이스를 통해 발전하는 것인데 메르스가 이대로 잊혀지는 것이 안타까웠다”며 “과거 신종플루를 겪으면서도 의료계에는 제대로 된 기록이 없었는데 이번 메르스 사태를 최대한 사실에 입각해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백서를 통해 각계의 전문가들이 집단발병, 재난 등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논의하고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메르스가 보건의료체계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는 지침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