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결정에 따른 중국 정부의 보복 분위기가 거세지면서 의료계는 초긴장 상태다.
관광·유통업을 넘어 그 여파가 외국인 의료관광을 신성장동력으로 여기고 있는 병원계, 중국 진출을 꾀하는 제약, 의료기기 등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중국 병원의 90% 이상은 국가가 직접 경영하는 국공립기관으로 한국 제품의 사용을 자제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우려감이 커지는 모습이다.
중국환자 많은 피부·성형 개원가 ‘문의 뚝’
최근 중국 정부가 한국관광상품 판매 전면 금지 조치를 내린 후 관광객이 크게 줄었다. 이에 따라 미국, 러시아, 몽골, 카자흐스탄 등 의료관광객을 다변화하고 있는 대학병원과 달리 개원가에선 비상이 걸렸다.
특히 서울 강남지역의 피부․성형외과는 중국인 환자들이 예약을 했다가 수술을 취소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환자 방문은 물론 문의마저 뚝 끊겼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6년 외국인이 국내에서 사용한 신용카드 내역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인이 국내 의료부문에서 신용카드로 쓴 비용은 2906억원으로 전체 외국인 의료 지출 비용의 56.7%를 차지했다.
특히 중국인들 중에는 한국의 성형외과를 찾는 비중이 크다. 보건복지부와 보건산업진흥원의 최신 자료에 따르면 2015년 한국을 방문한 전체 중국인 환자 중 24%가 성형외과를 찾았다.
대한성형외과학회 관계자는 “아직 정확한 수치를 파악한 것은 아니지만 사드 갈등이 불거진 이후 중국인 환자 비율이 계속 줄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의료진 정리 등 규모를 축소한 곳도 있다"고 말했다.
의학계도 몸을 사리는 분위기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작년 한창 사드로 시끄러울 때 한국 학술대회에 늘 참석하던 중국 의학자들이 이번엔 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제약계 “아직 영향은 적지만 불확실성 커져”
글로벌 시장조사기업 IMS헬스 추정에 따르면 중국 의약품 시장은 3년 내 2200억 달러(약 252조4500억원)로 커진다. 세계 2위 시장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얘기다.
향후 시장성을 보고 중국시장에 속속 진출하고 있는 국내 제약사들은 아직 매출 하락 및 허가 장벽 등은 체감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당분간 마케팅, 영업 등에 파장이 있을 것으로 보고 숨을 죽이는 모습이다.
의약품 임상시험이나 허가·출시 과정은 중국 정부의 의지가 작용할 수밖에 없는 만큼 단기적으론 영향이 보이지 않더라도 중국의 보복이 장기화할수록 시장에 발을 들이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기술수출의 경우도 조건 변화나 갑작스러운 계약 해지 등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지난해 12월 유한양행이 중국 제약사 뤄신과 체결한 1억2000만달러 규모의 비소세포폐암 표적치료제 기술수출 계약이 해지됐다. 최근에는 보타바이오가 중국 산동롱욱에너지유한공사와 체결한 1729억원 규모의 물품 공급계약이 취소됐다.
이들 모두 중국 측 계약 상대방의 계약 불이행 등에 따른 것이었다. 앞으로도 정부 통제가 강력한 중국 기업의 특성상 국내 기업과의 기술수출 계약 추진시 외압이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중국 제약 산업에서 국내 업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크지 않기 때문에 아직 직접적인 제재는 크진 않다”면서 “하지만 광범위하게 영향력이 행사되고 있는 만큼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중국 정부 까다로운 인허가’ 당혹감 의료기기업계
의료기기업계에선 “중국 정부가 인허가를 까다롭게 하거나 이유 없이 심사 기간을 연장하는 등의 방법으로 곤란하게 하고 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우리나라 기업이 중국으로 의료기기를 수출할 경우에는 중국 식약당국(CFDA)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유 없는 지연’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주의료기기테크노밸리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사업 논의를 진행해온 중국 기업으로부터 잠정 유보 통보를 받았다. 단기적으로는 이렇다 할 대책이 없어 손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중국의 웨이가오그룹유한공사는 우리나라 기업이 생산한 제품의 인허가, 판매, 마케팅 등을 담당하기로 했다. 국내에선 중국 지자체가 마련한 생산시설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허가와 판매까지 현지 기업에 위탁키로 했다.
원주의료기기테크노밸리 관계자는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웨이가오그룹과 협업을 해 왔고 투자 협력까지 체결했지만 논의 시작 한달도 되기 전 유보하자는 통보를 받았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사드 배치로 중국 내 한국 기업에 불똥이 튀면서 중국에서 B2B플랫폼, 바이오 의료기기 인허가 등을 준비하고 있는 국내 업체들도 고충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오스템임플란트는 의료기기 경영허가증을 갱신하지 못해 7개월 동안 정상적인 영업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가 한 관계자는 “제품 허가 절차가 상대적으로 긴 제약, 의료기기산업 특성상 당장 큰 손실은 없겠지만 외교 문제가 길어지면 문제는 심각해진다”면서 “기술수출, 제품수출 등 일부 제약사, 의료기기업체의 실적과 직결될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