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암 말기의 외국인 환자 A씨는 “죽기 전 한번이라도 항암치료를 받아보겠다”며 한국의 한 병원을 찾았다. 그는 의료진에게 치료의지를 피력했고, 항암치료가 진행됐으나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
환자가 사망한 후 정상적으로 퇴원처리가 이뤄졌다. 그런데 한 달 후 병원은 대사관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사망환자의 자녀들이 병원 측 의료과실을 주장하며 대사관을 통해 진료비 보상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해 한국 의료기관을 찾은 외국인 환자 수는 약 30만명. 이 처럼 국내 의료기관을 찾는 외국인 환자가 늘어나면서 병원과의 의료분쟁도 잇따르고 있다.
서울대병원 정은희 응급간호팀장은 최근 병원간호사회가 진행한 보수교육에서 “외국인 환자의 불만족 요인이 의료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각별한 주의와 대비를 당부했다.
외국인 환자와의 분쟁은 크게 △계약조건 불일치 △통역오류 △의료사고 △병실 명도 △진료비 체불 △사후관리 미비 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 B병원의 경우 직장내시경 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설명 부족에 따른 외국인 환자의 오해로 분쟁에 휘말렸다.
해당 외국인 환자가 직장내시경 직전 수행된 직장수지검사에 대해 “성추행을 당했으며 검사 시 발생한 통증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했다”며 민원을 제기한 것이다.
당시 의사는 검사 진행을 영어로 안내했지만 환자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또 이 환자는 검사실에서 의사와 직원 간 한국어 대화를 비웃는 소리로 오해하기도 했다.
정은희 팀장은 “신체가 노출되는 검사의 사전설명 중요성을 일깨운 사례”라며 “검사나 시술 전 의료진은 검사과정, 부작용 등을 환자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며 “문서로도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설명의무 소홀뿐만 아니라 통역 오류로 인한 다툼도 있다.
C병원에 입원한 러시아 환자가 내시경 현미경 레이저 수술을 받은 뒤 통역 코디네이터에게 퇴원 후 주의사항을 들었다. 그런데 해당 코디네이터가 약물 복용법을 잘못 설명해 1주일 간 약물을 과다 복용했고, 환자는 위장장애와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병원 측에 항의했다.
정 팀장은 “통역 코디네이터 소속에 따라 고용주가 책임을 지게 된다”며 “통역 오류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외국인에게 해당 언어로 투약 설명서를 함께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처럼 외국인 환자와 국내 의료기관 간 의료분쟁 및 소송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만큼, 국제표준에 따른 간호 및 진료서비스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은희 팀장은 “외국인 환자들은 표준화 된 글로벌 서비스를 기대하며 한국을 찾는다. 때문에 한국 고유의 서비스로 분쟁이 일어날 우려 있다”며 “국제 표준에 따른 간호 및 진료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외국인 환자 서비스 전담 부서, 국제진료센터를 더욱 체계화하고 외국인 환자들의 프라이버시 보장을 강화하기 위한 하드웨어 환경도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