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김진수 기자] 서울시가 운영 중인 환자권리옴부즈만이 지난 8월 실시한 서울시 소재 상급종합병원 문전약국 가루약 조제 현황 실태조사 결과 128곳의 문전약국 중 58곳이 가루약 조제를 실시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 환자권리옴부즈만은 6일 오전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제3회 환자권리포럼 ‘서울시 상급종합병원 문전약국 가루약 조제 현황 실태조사 및 개선방안’을 개최하고 현황 공개 및 개선방안에 대해 토론했다.
이날 발표된 조사는 서울시 소재 13개 상급종합병원으로부터 약국까지 직선거리 1km 이내의 문전약국 총 245개 중 조건에 부합하는 128곳을 선정해 실시됐으며 이를 통해 현황을 파악하고 환자의 의약품 접근권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됐다.
환자권리옴부즈만은 5가지 알약을 각각 0.063, 0.75, 0.5, 0.4, 0.4로 소분 조제해 총 90일 간 복용해야 하는 처방전과 1가지 알약을 0.25로 소분 제조해 총 150일 동안 복용해야 하는 처방을 가지고 전화조사했다.
약사법 제24조에 따르면 약국에서 조제에 종사하는 약사 또는 한약사는 조제 요구를 받으면 정당한 이유 없이 조제를 거부할 수 없다고 분명하게 명시돼 있다.
그러나 환자권리옴부즈만의 전화 문의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128개의 상급종합병원 문전약국 중 58곳(45.3%)이 가루약 조제가 불가능하다고 답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가루약 조제 불가능 이유로는 ▲처방된 약을 구비하지 못해서(15곳, 25.9%) ▲가루약 조제 기계가 없어서(12곳, 20.7%) ▲처방전을 약국에 가져오지 않아서(12곳, 20.7%) ▲가루약 조제 기계가 고장나서(7곳, 12.1%) ▲다른 환자들의 대기시간이 길어져서(2곳, 3.4%)로 분석됐다.
또한 환자권리옴부즈만은 약사 10명에게도 가루약 조제 거부 여부를 물었는데 10명 중 2명이 “가루약 조제를 거부한 적이 있다”고 답했으며 가루약 조제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를 물었을 때 10명 중 4명이 가루약 성분들이 혼재해 약의 효능이 변경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아울러 가루약 조제에 필요한 정부 차원의 지원 요구 사항으로 10명 중 5명이 “가루약 조제에 대한 건강보험 보상체계를 개선해 줬으면 한다”고 답했고 3명은 “제약사에서 약을 분제하거나 현탁액 등의 형태로 공급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서울시 환자권리옴부즈만 사무국장은 “상급종합병원 문전약국들이 가루약 조제를 거부하면 동네 약국으로 가는 수밖에 없고 동네 약국에서도 이를 거부하면 환자나 보호자가 집에서 직접 알약을 갈아 복용해야 한다. 이는 환자의 의약품 접근권이 심각하게 침해 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약계 “제형 변경 과정 어려움” 호소
반면, 대한약국학회와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등 약계에서는 정부의 지원 없이는 가루약 제조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따르며 의약품이 변질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한약국학회 김예지 약료위원장은 “먼저 환자들이 제조를 거부하는 것처럼 느낀 것에 대해 죄송함을 느낀다. 그러나 설문조사에 사용된 딜라트렌정, 카니틸산의 경우 습기 등에 약해 가루약으로 제조하는데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제도적으로 가루약 제조나 환자에 대한 모니터링을 할 수 있도록 보조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의약품정책실 엄승인 상무 역시 “여름이나 겨울에 제품이 변질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모든 약을 가루약으로 제조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일부에서는 제약사가 제형을 변경해 출시하면 해결되지 않겠냐고 이야기 하지만 현재 알약을 가루약이나 산제로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서는 안전성을 다시 인증 받고 새로운 임상을 실시해야하는 등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따른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복지부 역시 신중한 태도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정책과 정현철 사무관은 “알약 형태로 식약처 승인을 받은 의약품을 가루약으로 만들었을 때는 분명히 약물의 동태 등에 차이가 있다. 무작정 제형을 바꿔 처방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소아에게 의약품을 사용하기 위해 의료진이 오프라벨 처방을 하기도 하는데 이는 제품의 안전성을 깨는 것보다 치료 효과가 더 클 것이라는 판단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오프라벨로 처방되는 의약품을 가루약으로 제품화 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약무정책과 윤병철 과장은 “건정심에서 조제 수가를 이야기 했다. 가루약에 대한 이야기는 꾸준히 나오고 있었고 의료진 선택에 따른 약사들의 조제 뿐 아니라 의약품과 관련돼 있기 때문에 식약처 등과 함께 계속해서 논의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