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가위 ‘크리스퍼(CRISPR)’를 활용한 치료법이 세계 최초로 영국에서 승인됐다.
환자의 체내 세포를 채취해 일부 유전자를 교정한 뒤 다시 환자에 주입하는 방식으로 난치성 유전 질환 해결에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국 의약품건강관리제품규제청(MHRA)는 지난 16일 "겸상적혈구빈혈증과 베타지중해빈혈증 환자에 대한 크리스퍼 기반 치료법 ‘캐스게비(Casgevy)’를 엄격한 안전성 및 유효성 평가를 거쳐 승인했다"고 밝혔다.
캐스게비는 미국 바이오기업 버텍스제약과 크리스퍼테라퓨틱스가 공동개발했다.
겸상적혈구빈혈증과 베타지중해빈혈증은 모두 체내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의 유전자 오류로 발생하는 유전질환이다.
겸상적혈구빈혈증은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에서, 베타지중해빈혈증은 지중해 지역과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중동에서 많이 발생한다. 특히 겸상적혈구빈혈증은 미국 약 10만명, 영국 약 1만5000명 등 전(全) 세계적으로 수백만명이 앓고 있다.
이번에 승인받은 캐스게비 치료법은 이들 환자의 유전자를 크리스퍼로 교정해 정상 헤모글로빈을 생성토록 한다.
지난 2012년 개발된 크리스퍼는 유전자 일부를 잘라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기술이다. 그간 생명공학계 혁신을 일으키며, 지난 2020년에는 개발된 지 8년이라는 짧은 시간만에 크리스퍼 개발자들이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번에 승인받은 치료법은 우선 환자 줄기세포를 골수에서 채취한 뒤 크리스퍼를 사용해 채취한 줄기세포 속 유전자를 교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교정한 줄기세포를 다시 환자에 주입하면 이로부터 정상 헤모글로빈이 지속 생산된다.
앞서 시행된 임상시험에서 겸상적혈구빈혈증 환자 29명 중 28명은 새 치료법을 받은 뒤 1년 이상 심각한 통증을 겪지 않았으며, 베타지중해빈혈증 환자 42명 중 39명은 1년 동안 정상 헤모글로빈 공급을 위한 수혈이 불필요했다.
영국을 포함해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에서 추가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으며, 미국식품의약국(FDA)도 12월 8일 내에 캐스게비에 대한 승인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MHRA 관계자는 “최초의 유전자 교정 치료법인 캐스게비 승인을 발표하게 돼 매우 기쁘다”라며 “MHRA는 승인 후 안전성 연구를 통해 캐스게비 안전성과 효과를 지속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밝혔다.
캐스게비를 개발한 버텍스 파마슈티컬스 관계자는 “아직 영국에서 이 치료법 가격을 정하지 않았다. 가능한 빨리 환자 보상과 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해 보건당국과 협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에서는 겸상적혈구빈혈증 환자의 치료비가 65세까지 약 160~170만달러(약 20억~22억원)에 소요되며, 새 치료법은 최대 약 200만달러(약 25억원)이 적정 비용으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