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저수가로 인한 분만 인프라 붕괴가 가속화 되면서 출산을 위해 병원을 찾아 헤매는 ‘분만 난민’이 늘고 있는 실정이다.
그동안 시도된 여러 회생책이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국가 차원에서 ‘분만의료’를 관장하는 컨트롤타워 설립이 시급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장 이상적인 벤치마킹 대상으로 '중앙응급의료센터'를 지목한다.
중앙응급의료센터는 응급의료체계 실무를 총괄하고 효율적인 응급의료 자원 관리 및 운영을 기치로 지난 2000년 발족했다.
재난상황을 신속하게 전파하고 의료 대응을 통합적으로 조정하며, 응급환자가 적절한 장비와 인력이 있는 곳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병원간 전원 지원 업무를 담당한다.
뿐만 아니라 △응급의료 정보망 구축 △응급의료 통계조사 △응급의료 종사자 교육 △해외 재난 의료 지원 △닥터헬기 등 우리나라 응급의료의 모든 사항을 관장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중앙응급의료센터에 착안해 오롯이 ‘분만의료’만을 위해 운영되는 ‘중앙분만의료센터(가칭)’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세부적으로는 국가분만의료정보망을 구축해 분만의료 자원의 효율적 분배를 도모하고, 분만 응급환자가 신속하게 치료받을 수 있도록 병원 간 전원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조언이다.
뿐만 아니라 분만의료기관 평가를 통해 분만의료 질 관리에 나서는 한편 재정적, 제도적 지원근거로 활용하는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분만 권위자인 순천향대 서울병원 이정재 병원장(산부인과)은 “분만실과 응급실은 여러 측면에서 유사하다”며 “중앙응급의료센터 모델을 분만의료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 차원의 분만의료 컨트롤타워가 설립되면 보다 안정적인 분만 시스템이 가동될 것”이라며 “그나마 유지 중인 분만 인프라의 효율성 극대화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분만병원들의 산모 수용 여부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며 “전원이 필요한 환자가 발생하더라도 병원들이 일일이 전화를 돌려야 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응급의료 모니터링 시스템과 같은 체계가 분만의료에도 구축돼야 한다”며 “단편적 지원책을 넘어 분만의료 전체를 관장하는 기구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중앙응급의료센터 착안 ‘중앙분만의료센터’ 설립 필요
산과 진료‧교육‧인력양성 아우르는 기구, 분만의료기금 등 재원 마련도 벤치마킹
경기 지역에서 20년 이상 분만을 수행 중인 예진산부인과 오상윤 원장은 “분만 인프라가 열악한 만큼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특히 지역 국공립병원을 중심으로 분만 인프라를 확대하려는 정책 방향에 대해 강한 반감을 나타냈다.
오상윤 원장은 “국·공립병원 중심의 정책은 쏠림을 초래할 것”이라며 “통합적인 기구를 통한 지역 네트워크를 구축해 분만의료 인프라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분만을 담당할 의사가 없어 '출산 난민'이라는 용어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출산 장려정책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며 “이러한 문제를 총괄할 컨트롤타워가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대한산부인과학회 오수영 분만인프라 TF 위원장(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은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분만을 교육할 산과 교수가 없다는 점”이라고 토로했다.
분만 인프라 붕괴는 병원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고위험 환자들의 치료기회가 없어진다는 의미인 만큼 진료, 교육, 인력 양성을 아우를 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대한분만병의원협회 신봉식 회장은 무너진 분만의료 전달체계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중앙분만의료센터 설립이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산모가 대학병원을 원하면 진료의뢰서를 써 줄 수 밖에 없다”며 “컨트롤타워가 생기면 2차, 3차 분만병원들의 정체성 확립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역시 분만의료 정보 공유체계 필요성에 공감했다.
보건복지부 임강섭 지역의료정책과장은 “산모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체계를 갖춰 언제 어떤 산모가 고위험으로 바뀔지 파악하는 네트워크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러한 문제는 분만실에만 해당하지 않고 NICU(신생아집중치료실), 마취과 등 전반적인 협력체계를 갖춰야 한다”며 종합적인 접근 필요성을 강조했다.
컨트롤타워 설립은 물론 운영을 위한 재정 역시 중앙응급의료센터 사례를 주목해 봐야 한다는 제언이다.
중앙응급의료센터의 경우 정부 예산이나 건강보험 재정이 아닌 응급의료기금을 통해 운영된다. 규모는 4000억원에 달한다.
1995년 50억원 규모로 조성된 응급의료기금은 2002년 교통 범칙금 총수입의 20%에 해당하는 금액을 배정받도록 법이 개정되면서 4000억원으로 늘었다.
응급의료기금은 응급의료 관련 시설, 인력, 장비, 시스템 구축에 투입됐고, 국내 응급의료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건강보험의 경우 한정된 재정 특성상 분만의료에만 치중될 수 없는 구조이고, 별도 예산 확보 역시 녹록치 않은 만큼 기금을 통한 재원 마련에 기대해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물론 기금 조성 역시 정부부처 간에 조율이 필요한 만큼 쉽지만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임강섭 지역의료정책과장은 “예산이든 기금이든 재정당국과 협의가 수반돼야 한다”며 “우선 컨트롤타워 설립부터 추진하고 재원 마련은 추후 논의하는 게 순서”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