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 사태로 젊은의사들의 해외 진출이 늘고 있는 가운데 대학병원 교수, 특히 세계적 권위자인 명의(名醫)들 이탈 움직임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대한민국 의료대란 상황을 지켜보던 해외 의료 선진국들이 사태 장기화로 정부 정책에 환멸을 느끼는 교수들에게 잇따라 러브콜을 보내면서 현실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감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의학계 추계 학술대회 시즌이 다가오면서 일부 해외 대학병원에서는 물밑 협상 중이던 권위자를 직접 만나기 위해 한국을 찾는 경우가 적잖은 것으로 전해졌다.
의학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대학병원 교수들에게 미국, 유럽 등 해외 의료 선진국으로부터 영입 제안이 잇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평소 친분이 있던 해외 교수는 물론 과거 해외연수에서 인연을 맺은 병원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제안이 들어오면서 상당수 교수들은 이직을 진지하게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 의학계에서 한국의료의 위상을 감안하면 해외병원들의 한국의사 선호도는 상당히 높다는 평가다. 술기 수준은 물론 풍부한 임상경험이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해외병원들의 최근 들어 부쩍 늘고 있다. 의정갈등 초기만 하더라도 격려와 위로가 주를 이뤘지만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의료정책에 염증을 느끼는 교수들이 늘고 있음을 간파한 결과다.
특히 해외병원들은 파격적인 대우와 전폭적인 연구 지원 등 여러 당근책을 제시하며 한국의료 석학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국의사 영입을 위해 직접 한국을 찾는 경우도 적잖다. 최근 열린 한 외과계 국제학술대회에는 다수의 해외 의료진이 영입 대상과의 만남을 위해 학회에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달부터 학회들의 국제학술대회가 본격 예고돼 있는 점을 감안하면 각 분야 석학을 모시기 위한 해외 의료진의 방문이 더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한 학회 임원은 “예전에는 친목 도모 차원에서 해외 의료진과 그룹 형태의 만남이 주를 이뤘지만 이번 학회는 개별적 만남이 부쩍 늘어났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해외 러브콜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던 교수들도 최근에는 전향적 분위기가 역력하다”며 “난파된 한국의료에 염증을 느껴 이탈이 가속화 되지 않을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학회 임원은 “이번 추계 학술대회는 해외 의료기관들의 한국의사 영입을 위한 스토브리그를 연상케 한다”며 “조만간 석학들의 해외 이적 소식이 잇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세계적 석학들의 이탈은 한국의료에 치명적일 것”이라며 “의료를 살리겠다는 의료개혁이 도리어 의료를 붕괴시키고 있는 형국”이라고 덧붙였다.
젊은의사들의 해외 진출은 이미 가시화 된지 오래다. 의대생단체 투비닥터에 따르면 의·정 갈등 이후 해외 진출을 고려하는 의대생이나 전공의가 크게 늘었다.
올해 초 조사에서는 해외 의사면허 취득을 고려한다는 의견이 전체의 1.9% 수준이었으나 최근 조사에서는 41.3%까지 높아졌다.
뿐만 아니라 최근 한 의사단체가 마련한 해외 진출 강연에는 사직 전공의와 전문의 수 백명이 몰려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번 행사를 마련한 의사단체 임원은 “더 이상 한국에서 응급의학과 의사를 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젊은의사들 상당수가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무리한 의료개혁 추진만 아니었더라도 이들은 진료현장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었을 것”이라며 “이들을 해외로 내몰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정부”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