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바람도 사라진 노벨의학상···체념 상태
의학계, 스웨덴 유전학자 수상 소식 '무덤덤'…"우리나라는 구조적 한계"
2022.10.05 12:36 댓글쓰기

올해도 역시나 한국은 노벨생리의학상 무관(無冠)의 설움을 이어갔다.


이제는 실망을 넘어 체념에 가까운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는 분석이다.


기초의학을 살리기 위한 심폐소생술이 시급하다는 진단과 함께 단기간 성과 지향주의 연구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스웨덴 칼로린스카 의과대학 노벨위원회는 2022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스웨덴 출신 진화유전학자 스반테 페보(67. 독일 막스 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 박사를 선정했다.


페보 박사는 오래 전에 멸종한 호미닌(인간의 조상 종족)의 유전체을 분석해 인류의 진화과정을 밝혀낸 공로를 인정 받았다.


개인의 영예를 넘어 국격(國格)이 거론될 정도의 절대적 권위와 명예를 상징하는 노벨생리의학상이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단 한 명의 수상자도 배출되지 않았다.


물리학상 10명, 화학상 7명, 의학상 5명 등 과학 분야에서만 20명 이상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과 비교할 때 너무나 초라한 현실이다.


임상의학 분야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기초의학 분야에서는 존재감 찾기도 힘들 정도의 입지가 다시금 입증된 셈이다.


특히 2019년 서울의대 방영주 교수, 2020년 기초과학연구원 현택환 단장, 2021년 고려대학교 이호왕 명예교수 등이 후보로 꼽혔지만 올해는 후보군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다.


작금의 상황은 단기 성과에만 집착하는 우리나라의 연구환경, 기초의학에 대한 홀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한국연구재단의 ‘노벨과학상 수상자 분석’에 따르면 최근 10년 간 노벨과학상 수상자 77명은 평균 37.7세에 핵심 연구를 시작해 55.3세에 완성하고, 69.1세에 수상했다.


핵심 연구 시작에서 수상까지 평균 32년이 걸렸다는 얘기다. 하지만 장기 연구에 관대하지 않은 국내 연구 풍토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실제 대다수의 국내 연구자들은 장기간 대형 연구과제 보다는 3년 이내의 단기 소형 과제 수주에만 내몰려 있는 실정이다. 장기적이고 창의적인 연구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처지다.


정부 연구과제 역시 거의 매년 정량평가를 받아야 하고, 학교나 병원 소속 교수들은 연구 아이템과 가능성이 아닌 연구비 규모와 성과가 능력으로 재단되는 게 현실이다.


결국 한국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단 한명도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연구문화와 장기연구에 대한 인색한 투자 등에 기인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물론 국내 의학계에서는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가 발표될 때마다 장기연구 환경을 마련하고 의학자들의 처우 개선을 통해 연구 몰입도를 높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 역시 의학계 지적에 공감을 표하며 노벨상 수상을 위한 제도적 지원을 다짐했지만 그 때 뿐이었다.


이러한 상황이 되풀이 되면서 국내 의학계는 ‘어차피 안된다’는 체념이 점점 커지는 모양새다.


한 의과대학 연구부학장은 “작금의 국내 연구환경으로는 노벨생리의학상을 기대하는 것은 과욕”이라며 “획기적인 개선이 절실하다”고 설파했다.


이어 “의학자가 긴호흡으로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며 “이는 단일기관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의과대학 기초의학교실 교수는 “국내 의학자들에게 노벨생리의학상은 너무나 먼 나라 얘기”라며 “무엇이 문제인지 알면서 고치지 못하는 현실이 더 문제”라고 쓴소리를 던졌다.


이어 “최근 화두로 부상 중인 의사과학자 양성과 관련해서도 연구에 전념하는 의학자가 아닌 또 다른 임상의사 배출의 우회로가 되지 않을지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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