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장고(長考) 끝에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내놨지만 곳곳에서 우려와 반발이 빗발치며 향후 제도화까지 상당한 험로(險路)가 예상된다.
특히 의료서비스 제공 주체인 의료계는 물론 소비자인 환자들까지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어 궤도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중증·응급, 분만 등 필수의료 분야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지난해 7월 대형병원 간호사 뇌출혈 사망사고로 관련 논의에 착수한지 6개월 만이다.
필수의료를 담당할 인력 양성부터 필수의료 지속을 위한 적정보상, 불가항력 의료사고 국가책임 강화 등이 핵심이다.
하지만 ‘국민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강화’라는 정부의 지향점에도 불구하고 이번 지원 대책에 대한 반발이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각계의 시각에서는 기대감 보다는 아쉬움이 크다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먼저 대한뇌졸중학회는 심뇌혈관 치료 전국 네트워크 구축은 지지하면서도 뇌졸중의 80%를 차지하는 뇌경색 치료 대책 부재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심뇌혈관질환과 관련해 주로 응급수술과 관련된 대책만이 포함돼 있을 뿐 골든타임 내 치료가 중요한 뇌경색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책은 없다는 지적이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역시 “무성의한 지원대책으로 나아질 필수의료라면 애초부터 문제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이번 정부 대책을 평가절하했다.
응급실 과밀화 및 의료취약지 대책이 없어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얘기다.
정부는 야간 및 공휴일, 만 6세 미만 소아, 중증환자를 받는 경우 가중치를 부여하고, 24시간 응급의료 의무를 위반할 경우 과태료와 상급종합병원 지정취소라는 패널티를 적용키로 했다.
의사회는 모든 환자를 각 지역에서 최종치료까지 완결하려면 충분한 자원이 필요하지만 이번 대책은 그에 대한 해결책이 없고,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한 방안이라고 지적했다.
의사회는 “과밀화와 취약지 대책이 없는 응급의료체계 개편은 무의미하다”며 “현장 전문가 의견을 청취하고 정책에 반영할 논의체를 구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서울시의사회는 공공정책수가 및 필수의료 보상지원 증액에 대한 구체적 재정이 없는 아랫돌 빼 윗돌 괴는 식의 지원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상대가치점수 조정 등 의료기관 종별, 분야별 보상체계 조정은 자칫 또 다른 취약 분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시의사회는 “재정 지원이 없고, 법률적 보호 대책이 빠진 지원 대책으로는 붕괴된 필수의료를 결코 되살릴 수 없다”라고 힐난했다.
의학계‧개원가 “비현실적 대책” 힐난
종별가산‧전공의 정원 등 뇌관 건드린 政
환자단체, 의료사고 특례에 거부감 팽배
‘종별가산 폐지’도 우려계의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현재 종별가산율은 상급종합병원 30%, 종합병원 25%, 병원 20%, 의원 15%씩 적용되고 있다.
정부를 이를 수술·처치·기능검사 등과 검체·영상검사로 행위를 나눠 15%씩 줄인다는 복안이다. 특히 검체·영상검사 영역은 아예 종별가산을 폐지한다는 계획이다.
종별가산제도 개편으로 확보된 재정을 외과계 수술 등 필수의료 보상 강화에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의료계에서 하석상대(下石上臺)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방의료 소멸 방지 대책으로 제시된 지역별 전공의 비중 개편 역시 논란을 키우고 있다.
복지부는 이번 대책에서 수도권과 비수도권 전공의 배치 비중을 현재 6:4에서 5:5로 조정하는 동일한 방안을 제시했다.
지역 의료전문가 양성 및 질병 양상 변화에 따른 정원 조정이라고 부연했지만 전문과목별 전공의 정원은 의료계 내부에서도 첨예한 문제인 만큼 적잖은 논란이 예상된다.
의료소비자인 환자들과 시민단체들 역시 이번 정부 대책에 회의감을 감추지 않았다. 물론 의료계와는 결이 다른 이유였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이번 필수의료 지원 대책은 부족한 의사를 확보할 방안이 없는 땜질식 대책”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병원 순환당직제에 대해서는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상급종합병원의 의사 미확보에 따른 직무유기를 정부가 합법화하고 보상하는 방안”이라고 질타했다.
의료사고 부담 완화를 위한 의료인 형사처벌 특례와 관련해서도 “의료인의 주의의무 책임 완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철회를 촉구했다.
환자단체 역시 의료사고 형사처벌 특례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의료사고 현장에는 충분한 설명도, 적정 피해보상도 거의 없거나 드문 게 현실”이라며 “의료인 과실이 없음을 입증토록 하는 제도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와 국회는 의료인 형사처벌 특례가 아닌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족의 울분을 풀어주고, 입증 부담을 완화하는 입법 조치부터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