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이었다. 개념 조차 생소했던 ‘디지털병원’이라는 개원 슬로건에 병원계는 술렁였다. 챠트와 필름, 전표, 종이가 없는 ‘4 Less(Chartless, Filmless, Slipless, Paperless)’를 기치로 한 디지털병원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최초의 시도였다. ‘혁신’이 ‘확신’으로 바뀌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과감한 시도를 단행한 분당서울대학교병원은 단숨에 병원 정보화 선도모델로 자리매김했고, 빠른 속도로 의료서비스 패러다임 변화를 주도해 나갔다. 분당서울대병원 ‘압축 성장’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사실 분당서울대병원 성공을 예측한 이는 많지 않았다. ‘분원’이라는 한계에 부딪쳐 고전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선제적인 의료정보시스템 구축을 통해 의료환경 변화를 정확히 읽어냈고, 이후 젊고 혁신적인 병원으로 굳건한 입지를 다져나갔다. 그렇게 당찬 걸음을 내딛은지 벌써 20년. 분당서울대병원은 이제 그동안 쌓은 혁신 내공을 바탕으로 또 한 번의 새로운 행보를 예고하고 있다.
진료 수준 제고, 질적‧양적 동반 성장
분당서울대병원의 20년은 압축성장 역사다. 2003년 개원 후 실질적인 상급종합병원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행정구역별 병상 수 제한에 묶여 승급에 난항을 겪어야 했다.
다행히 중증환자 진료의 실질적 경쟁력을 갖춘 병원이 선정되는 방식으로 제도가 바뀌면서 2009년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받아 도약에 가속도를 낼 수 있었다.
개원 10년 만인 2013년에는 암‧뇌신경병원 신관을 개원하며 진료의 양적 성장에 변곡점을 맞이했다.
2016년에는 의학 발전과 연구 패러다임을 선도하기 위해 ‘헬스케어혁신파크’를 개원했고, 2019년에는 첨단 전임상실험센터인 ‘지석영의생명연구소’를 개소하는 등 성장을 거듭했다.
이러한 분당서울대학교병원의 비약적 성장은 ‘디지털의 힘’과 함께 적극적인 인력확보와 지속적인 연구를 통한 의료 질 함양 노력이 투영돼 있다.
첨단기술에 기반한 진료환경 시스템 혁신과 함께 의료 본질인 의료진과 연구력 강화를 결합시킨 결과인 셈이다.
2003년 1일 평균 외래환자 1335명, 입원환자 449명 수준으로 시작한 분당서울대병원은 현재 외래환자 7000명, 입원환자 1200명으로 급성장했다.
무엇보다 의료의 질적 성장이 고무적이다. 개원 당시부터 암‧뇌신경 분야를 주력으로 한 결과 복강경, 흉강경, 로봇을 이용한 최소침습수술 분야를 선도할 수 있었다.
특히 세계 최초 복강경 간절제술 1000례 달성, 세계 최초 복강경 위암 안전성 입증, 국내 최초 신장암 로봇수술 1000례 달성 등 최초 기록을 갱신하며 최초침습수술 정착에 기여했다.
뇌신경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세계 최초 멀티플 카테터 코일색전술을 선보여 뇌혈관 내 수술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고난이도 정밀 술기인 미세뇌혈관문합술을 배우기 위해 아시아-태평양 지역 의사들이 매년 분당서울대병원을 찾는다.
뇌영상으로 검증된 뇌졸중 환자 10만명의 진료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세계 최대 규모로, 국제 뇌졸중 진료지침서의 근거로 사용된다.
의료산업 글로벌 허브 ‘헬스케어혁신파크’
분당서울대병원은 환자를 위한 술기 발전의 토대가 되는 것은 물론 고부가가치로 주목받고 있는 의료산업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연구 인프라 확충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병원이 주도하고 산업-학교-지자체가 긴밀히 연계되는 헬스케어 융복합 연구 클러스터인 ‘헬스케어혁신파크’는 분당서울대병원 미래를 상징한다.
코로나19 백신으로 유명세를 탄 모더나 역시 하버드대병원을 중심으로 한 보스턴 클러스터에서 태생했음을 감안하면 헬스케어혁신파크에 대한 기대감이 클 수 밖에 없다.
실제 헬스케어혁신파크는 병원과 제약사, 연구소가 함께 위치하는 모델을 지향, 분당서울대병원을 중심으로 기업과 연구소 등이 바이오메디컬 클러스터 모델을 구축 중이다.
헬스케어혁신파크에는 초창기 벤처기업 35곳이 입주해 있고, 병원과의 협업 연구는 물론 동물실험, 전임상실험 등에 대한 지원이 이뤄진다.
아이디어만 있다면 투자와 특허, 상품화까지 이어지는 성공모델 창출을 기치로 현재 6개 기업이 코스닥에 상장했고, 1개는 나스닥에 진출하는 등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스타트업이 의사를 만나기는 어렵지만 헬스케어혁신파크에서는 처음부터 의사와 협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사업화 전주기를 지원받을 수 있다.
2022년부터는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K-바이오헬스 지역센터를 유치해 창업기업에게 시설, 장비 등을 비롯해 아이디어 발굴, 제품화, 컨설팅 등을 제공 중이다.
지난해 7월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헬스케어혁신파크에서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며 미래 국내 바이오산업 허브로서의 위상을 확인시키기도 했다.
실제 이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정부 및 유관기관, 기업 관계자들과 바이오헬스 분야 규제 혁신 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
송정한 원장은 “미래의학 패러다임을 선도하기 위해 산업계, 대학교, 연구기관, 병원이 어우러진 연구 생태계를 조성해 세계적인 바이오헬스케어 중심지로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첨단 동물실험 인프라, 감염병 사태서 진가 발휘
기초‧임상의학 및 생명과학 발전의 원동력인 실험동물 연구와 동물실험이 이뤄지는 전임상실험센터 ‘지석영의생명연구소’는 의료산업 전초기지 역할을 수행 중이다.
지하 3층, 지상 1층에 연면적 3000평 규모로 설립된 지석영의생명연구소는 실험동물 3등급 시설을 갖추고 있다.
설치류 7500케이지와 중동물 230케이지, 대동물 50케이지, 4개 대동물 수술실과 중환자실, 7테슬러 MRI와 PET 및 사선동위원소 촬영이 가능한 영상실험 구역까지 갖춘 첨단 연구소다.
국공립병원 최초로 ABSL3(Animal Biosafety Level 3) 실험실을 갖춰 메르스, 사스, 탄저균 등 고위험병원체 연구가 가능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각종 신종 감염병에 대한 선도적인 기초 및 중개연구가 가능하며, 글로벌 임상연구 선도, 국가재난형 감염병이나 바이오테러 발생시 신속한 대응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말 못하는 동물을 상대로 각종 연구와 실험이 이뤄지는 만큼 동물 복지까지 꼼꼼하게 신경 쓰고 있다.
실험동물 윤리적 취급은 물론 수의학적 관리도 이뤄지며,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심사를 통해 동물실험이 윤리적, 과학적으로 시행될 수 있는지 면밀한 검토가 이뤄진다.
뿐만 아니라 동물 사육공간 확장, 최첨단 사육장비 구축, 동물 케이지 내 쾌적한 환경 제공은 물론 설치류와 중대동물 전담 수의사를 각각 배치했다.
이러한 첨단시설 및 동물복지에 기반한 인프라를 기반으로 지난해 국제실험동물관리인증협회로부터 최고 등급인 ‘완전 인증’을 받았다.
송정한 병원장은 “지석영의생명연구소는 전임상 실험은 물론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백신 동물실험을 도맡았다”며 “연구기능 강화를 위해 2024년까지 지상 8층까지 증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