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귀·난치질환 환자 치료 선택권 확대를 위한 대마 성분 의약품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난치성 뇌전증 치료제를 중심으로 환자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는 가운데, 오남용 차단과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이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지난 7일 서미화(더불어민주당)·김형동(국민의힘) 의원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국회에서 ‘대마 성분 의약품 도입 방안 정책토론회’를 공동으로 주최하고 환자단체, 전문가, 정부 관계자 등과 함께 제도 개선 방향을 논의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허도경 한국뇌전증협회 이사, 김기영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 본부장, 박성수 세명대학교 경찰학과 교수, 채규한 식품의약품안전처 마약안전기획관 등이 참석했다.
허도경 한국뇌전증협회 이사는 난치성 뇌전증 환자에게 에피디올렉스가 단순한 약제가 아니라 삶의 질을 바꿀 수 있는 치료 선택지라고 강조했다.
허 이사는 “기존 항경련제를 여러 종류 사용해도 발작이 조절되지 않는 난치성 뇌전증 환자에게 에피디올렉스는 마지막 치료 선택지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며 “단순한 약이 아니라 일상을 살아갈 기회”라고 말했다.
현재 에피디올렉스는 국내에서 일반 유통 의약품처럼 병원 처방 후 병원이나 약국에서 바로 받을 수 있는 방식이 아니라,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한 공급 체계에 의존하고 있다.
환자가 필요할 때 즉시 약을 받기 어렵고, 처방·신청·확인·수령 등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한다. 에피디올렉스는 해외 공급망, 단일 공급사로 인해 국내 환자들이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김기영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 본부장은 “월평균 9건 수준이던 신규 처방이 지난해부터 15건으로 늘었다”며 “성인 환자도 많아지고 있어 만성질환적 특성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에피디올렉스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단일 글로벌 제약사가 공급하고 있어 공급망 문제가 국내 환자에게도 영향을 준다”며 “센터 역시 공급 과정에서 인력과 재정 부담을 안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한적으로 허용된 대마 성분 의약품 사용을 제도권 안에서 확대하고, 환자 접근성과 국내 개발 기반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민두재 한국칸나비노이드협회 회장은 환자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처방 의사와 의료기관, 제약사에 명확한 관리 책임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민 회장은 “절차의 불편함이 환자와 보호자에게만 집중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며 “처방 가이드라인, 관리 기준, 의료진 교육을 통해 오남용은 막고 환자 편의는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의료용 대마 확대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박성수 세명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는 “의료용 대마 확대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면서도 “대마가 현행법상 마약류에 속하는 만큼 제도·인식·형사정책 측면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펜타닐 패치 불법 유통 사례를 언급하며 “선의로 처방된 의약품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오남용될 수 있다”며 “의료용 대마 역시 불법 유출이나 암시장 형성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식약처 “환자 치료 접근성 확대 공감하지만 오남용 차단 병행 중요”
정부는 의료용 대마 성분 의약품 제도 개선과 관련해 환자 치료 접근성 확대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마약류 관리 원칙을 유지한 안전장치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채규한 식품의약품안전처 마약안전기획관은 “환자만 아픈 것이 아니라 환자 가족도 함께 아프고 긴 시간을 고통 속에 보낸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일부 환자에서 증상이 나아질 기회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더 좋은 방법이 없을지 고민해 왔다”고 말했다.
채 기획관은 “에피디올렉스 등 필요한 의약품을 국가가 미리 확보해 환자에게 공급하는 체계를 구축했고, 건강보험 적용까지 이어지면서 이전보다 환자 부담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에피디올렉스는 100만원이 넘는 고가 의약품이었고 보험 적용도 충분하지 않았다”며 “국가가 약을 준비해 두고 필요할 때 바로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체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다만 현행 제도가 여전히 일반 의약품 수준 접근성을 보장하지는 못한다고 인정했다.
채 기획관은 “절차를 개선했다고 하지만 일반적인 의약품으로 치료받을 때와 비교하면 여전히 불편한 부분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환자가 필요할 때 필요한 약을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오늘 제기된 의견들을 향후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대마의 경우 불법 영역이 치밀하고 정교해지고 있어 단순히 의료 목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규제를 완화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채 기획관은 “대마는 100년 넘게 국내서 관리돼 온 물질이고, 최근에는 불법 제품 제조·유통 방식도 더 정교해지고 있다”며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 고도화 및 의료진 처방 관리, 예방 교육, 형사사법기관과의 연계가 함께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의료용 대마 관련 법안에 대해서는 “의료적 활용 가능성을 열면서도 유통까지 엄격하게 관리하는 구조를 담고 있다”며 “통제된 시설과 공적 관리를 통해 환자 치료권과 마약류 안전관리가 공존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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