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수 늘린다고 필수의료 살아나지 않는다”
서울대병원 유호준 교수, 의료진 이탈 원인 분석…“보상·사법 리스크 개선 절실”
2026.10.03 05:24 댓글쓰기



사진제공 연합뉴스. 
정부가 필수·지역의료 강화를 명분으로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추진하는 가운데 단순한 의사 수 증가만으로 필수의료 인력 확충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필수의료 핵심 문제는 의사 ‘총량’이 아니라 실제 진료현장에서 나타나는 ‘분포 왜곡’이며, 낮은 보상체계와 높은 의료사법 리스크를 그대로 둔 채 의대 정원만 늘릴 경우 오히려 필수의료 기피가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유호준 서울대병원 정보화실 교수는 대한의학회지(JKMA) 2026년 9월호에 게재한 기고 ‘Expansion의 역설: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전문의 증가’를 통해 이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


유 교수는 현재 국내 필수의료 위기 본질을 의료인력의 절대적 부족보다는 ‘교육을 마친 인력과 실제 현장에서 진료하는 인력 간 괴리’에서 찾았다.


심장혈관흉부외과 전문의 82% 전공과목 ‘이탈’


대표적인 근거로 꼽은 사례는 바로 심장혈관흉부외과다.


신현영 前 의원(보건복지위원회)이 건강보험 진료비 청구 자료를 재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23년 3월 기준 심장혈관흉부외과 전문의 371명 가운데 304명(81.9%)이 전문과목 이외의 진료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술 분야에서도 전문과목 진료를 하지 않는 전문의가 52.1%(1370명)에 달했다. 주요 필수의료 분야인 산부인과는 38.0%, 소아청소년과는 24.1%, 내과는 12.1%가 전문과목을 벗어난 진료를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유 교수는 “이러한 수치가 전문의 배출 규모와 실제 필수의료 현장 인력 규모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전문의 자격 취득까지 이어지는 파이프라인 앞단에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하는 것만으로는 교육과 수련을 마친 이후 상당수 인력이 필수의료 현장을 떠나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중증도가 높고 의료분쟁 및 법적 위험이 크며, 상대적으로 보상 수준이 낮은 분야일수록 전문과목 이탈 비율이 높다는 점에 주목했다.


“의사 늘리면 1인당 수익 희석”…필수의료 진료량 확대도 ‘한계’


유 교수는 전문의 필수의료 기피 현상을 ‘기대값(Expected Value)’ 관점에서 설명했다.


의사가 특정 진료과를 선택할 때 기대되는 순수익뿐 아니라 의료사고에 따른 소송, 형사책임, 면허 관련 위험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건강보험 재정과 수가 구조가 사실상 고정된 상황에서 의사 수만 늘릴 경우 진료과 전체의 파이가 커지지 않는 한 전문의 1인당 순수익이 희석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저수가 구조에서는 일반 외래의 경우 진료시간 단축이나 검사 확대 등을 통해 일부 수익을 보전할 여지가 있지만, 필수의료는 장시간 처치와 고난도 수술이 요구되는 만큼 진료량을 무한정 늘리는 방식으로 수익성을 개선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결국 공급 확대만으로는 필수의료 분야 경제적 유인이 개선되기 어렵다는 결론이다. 


“의료사고=형사책임”…필수의료 기피 심화


의료사고에 따른 법적 부담은 의사 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낮아지지 않는 사실도 조명했다. 


유 교수는 한국 의료현장에서 의료행위 부정적 결과가 민사적 배상에 그치지 않고 형사절차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특히 중대한 의료사고나 판결 한 건이 개별 의사 경력과 면허 유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필수의료와 비급여·미용의료 사이에 구조적인 위험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필수의료에서는 예기치 못한 결과가 발생할 경우 형사·행정적 책임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감수해야 하는 반면, 비급여·미용의료 영역에서는 상대적으로 환불이나 민사적 분쟁으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아 위험-보상 구조에 차이가 생긴다는 것이다.


“의사 노동시장 하나로 묶으면 필수의료 인력 부족 희석”


유 교수는 의사 수가 늘어나면 경쟁을 통해 필수의료 공백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라는 이른바 ‘공급 과잉·경쟁 논리’에도 선을 그었다.


미용·비급여 영역처럼 수요가 비교적 탄력적인 분야와 심장수술, 분만, 신생아중환자 진료처럼 고도의 숙련과 경험을 필요로 하는 필수의료는 노동시장 대체 가능성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수가가 행정적으로 통제되고 진료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의료사법 리스크가 주요 비용으로 작용하는 상황에서는 일반적인 시장의 자율적인 조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결국 전체 의사 노동시장의 공급량만 놓고 필수의료 인력 부족 문제를 판단할 경우, 실제로는 대체할 수 없는 전문인력 부족이 가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유 교수는 의대 정원을 지나치게 확대할 경우 교육·수련의 질(質) 저하에 따른 의료사고 위험 증가 가능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특히 필수의료에 대한 낮은 보상과 높은 법적 위험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급만 확대하면 필수의료 전문과목 선택의 기대값이 오히려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필수의료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의대 정원과 전문의 배출 규모를 늘리는 접근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단순히 필수의료 인력 문제를 ‘몇 명을 더 배출할 것인가’ 문제로만 접근할 경우 의료현장에서 왜 전문의들이 해당 분야를 떠나는지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놓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교육과 수련을 마친 전문의가 실제 필수의료 현장에 남아 진료를 지속할 수 있도록 수가와 보상체계를 현실화하고, 과도한 의료사법 부담을 낮추는 등 ‘유인 구조’ 자체를 손보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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