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 논란으로 현직의사 3명이 법정 구속된 사건에 분개하며 대한의사협회(회장 최대집)가 지난 11일 전국의사총궐기대회를 개최한 이후 이제 시선은 총파업으로 옮겨질 전망이다.
여론이 모아진 만큼 총파업의 필요성을 강조한 최대집 회장은 궐기대회에서 “국민 건강을 지키는 의사들이 일방적인 희생만 강요당하고 있다”며 “총파업 실행 시기와 방식 결정은 집행부에 전권을 위임하겠다”고 밝혔다.
그 동안 의협은 정부, 국회, 경찰, 사법부 등에 의료계 요구를 제안하며 만약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개원의, 봉직의, 교수, 전공의 등 모든 직역이 참여하는 총파업의 구체적인 방식과 시기에 대해 논의를 진행하겠다는 뜻을 내비쳐 왔다.
사실 최대집 회장은 지난 4월27일 문재인 케어에 반발, “의료를 살리기 위해 의료를 멈추겠다”며 집단휴진을 예고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면서 의료계가 집단휴진을 강행할 경우 자칫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와 국회에선 여야를 막론하고 집단휴진에 대해 난색을 표하며 비판 수위를 높였다. 결국, 집단휴진 결정은 유보됐다.
하지만 이번 사안 만큼은 고의나 의학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의료행위 등을 제외하고는 형사상 처벌을 면제하는 의료분쟁 특례법 제정 문제와도 맞물려 있어 의협은 쉽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실제 대한응급의학회, 대한가정의학회를 비롯해 전공의들도 궐기대회에 적극 가세한 이유도 “언제든지 본인도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서다.
의협은 조만간 전국 시도의사회, 대한의학회, 대한전공의협의회 등 논의를 통해 총파업과 관련한 내부회의에 들어갈 예정이다.
복지부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 공감"
하지만 일각에서는 진료거부권과 (가칭)의료분쟁특례법 도입을 요구하고 있는 의협의 정당성에는 충분히 공감하나 24시간 총파업 결행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전공의협의회는 충분한 준비가 되고 필요하다면 집단휴진에 동참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대학병원에서 전공의들의 집단휴진으로 인해 공백이 발생할 경우, 적지 않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 보고 있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사망 사건으로 의료계 내 분위기가 악화일로로 치달았을 때도 전공의협의회는 긴 고민 끝에 파업이라는 강경책 대신 병원별 집담회를 열어 신중한 입장을 보인 바 있다.
대학병원 교수들 사이에서도 무리한 집단휴진 강행보다는 단체행동을 위한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서울 소재 A대학병원 교수는 “물론, 절실한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그 수단으로 집단휴진을 할 수도 있다”며 “하지만 여러 직역의 의견 수렴에도 불구, 2014년 노환규 前회장 재임 당시 집단휴진으로 인한 후폭풍이 거셌
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될 것”이라고 떠올렸다.
일선 의료진들의 업무정지, 면허정지 등의 행정처분과 그리고 과태료 부과 등 여러 위험요인도 감안해야 한다.
현행 의료법에서 정부(복지부장관, 시도지사, 시군구장)는 의료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중단하거나 집단 휴폐업해 환자 진료에 막대한 진료를 초래할 것으로 판단되면 의료인 및 의료기관 개설자에게 업무개시 명령
을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서울 소재 B대학병원 교수는 “파업은 의사가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수준의 대응이다. 파업을 하더라도 명분과 목적이 뚜렷해야 한다”며 “설령 파업이 진행된다 하더라도 결정 과정, 강제성, 기간, 방법 등에 대한 논의가 매
우 심도 있게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에서는 의협 총파업 검토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보건복지위원회 윤소하 의원(민주평화당)은 “의협의 집단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며 “최근 대리수술, 대형병원의 잇따른 의료사고 등 국민들은 공분과 함께 자정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의원은 “이러한 시점에서 의협은 의사 진료 거부권을 요구하고, 여기에 더해 총파업을 운운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지금 필요한 것은 집단휴진을 예고하는 것이 아니라 자정 노력을 통해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 가운데 복지부 관계자는 “전국의사총궐기대회를 지켜봤다. 의료계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며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는데 모아진 의견을 복지부에 전달해주면 검토와 협의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특히 의사와 환자 모두가 안전할 수 있는 진료환경 조성에 공감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지금까지 복지부도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을 위해 정책을 추진해 왔다”며 “필수의료 중심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을 추진할 것이며 의정합의와 관련된 사항도 의료계와 터놓고 지속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