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소송·소송으로 치닫는 정부 對 의약계
갈등 심화되면서 대한민국 보건의·약정책 최종 결정은 '법원'
2012.07.20 17:07 댓글쓰기

[기획 1] "보건의료정책의 향배를 가늠하는 곳은 바로 행정법원이다.” 보건복지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반발해 행정소송으로 맞대응하는 보건의료계 실태를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최근 들어 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의사 단체·제약기업 등이 적지 않다. 보건의약계는 그야말로 소송천국을 방불케 한다. 이러한 ‘송사(訟事) 제일주의’는 극심한 행정력 낭비로 이어진다. 소송비용도 수억 원을 웃돈다. 정부의 정책 로드맵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보건의료계와 제약업계 역시 온전한 정책적 수혜를 받기 어렵다. 정부와 업계의 대화 채널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은 결과다. 인내심을 갖고 대화하고 대안을 찾기보다는 법에 기대는 편의주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근래 이러한 극단적 갈등 구조는 더욱 표면화되는 모습이다. 원외처방 약제비, 영상장비 수가 인하 등 소송 규모도 갈수록 커져 법원 판결에 따라 한쪽은 감당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게 된다. 가톨릭대 여의도 성모병원과 대법원은 임의비급여를 놓고 지루한 법정공방을 벌였다. 대법원은 판결을 통해 제한적인 임의비급여가 가능토록 길을 열어줬다. 하지만 복지부는 “원칙적으로 임의비급여는 금지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포괄수가제(DRG)를 둘러싼 정부와 의사단체의 갈등은 점입가경이다. 의정 간 대화채널이 중단되고 상대를 비난하는 날 선 비판이 나온다. 급기야 포괄수가제를 담당하는 보건복지부 담당 과장이 130여 건에 달하는 문자테러를 당했다. 반면 의사협회는 보건당국이 의사를 인터넷상에서 매도했다고 분개했다. 이는 의정 갈등을 키우는 악순환이다.[편집자주]

 

소송 비용만 수십억…건보공단 행정소송 매년 늘어     
본지가 입수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요양급여비용 행정소송(공단피고) 현황’에 따르면 2009년 81건이던 것이 2010년 110건, 2011년 136건으로 매년 두 자리 수 이상 급증했다. 건보공단 법무지원실 관계자는 “행정소송 건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행정소송이 증가한 또 다른 이유는 요양기관과 의사단체의 치밀한 준비가 승소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과거 의료계는 행정소송이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인식이 컸다. 이런 인식은 통계로 입증된다.


2000년 7월부터 2006년 7월까지 건강보험과 관련해 복지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요양기간의 승소율은 10%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6곳의 요양기관이 제기한 헌법소원(1곳 진행 중)은 헌법재판소가 100%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10곳 중 9곳이 패소한 셈이다. 소송을 제기한 기관의 46%는 '자진 취하'라는 현실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것이 최근 분위기가 급변했다. 대한병원협회는 항소심 끝에 영상장비 수가인하 행정소송에서 이겼다. 복지부는 대법원 상고를 포기했다. 대규모 행정소송에서 정부를 이긴 흔치 않은 사례였다.


사건의 발달은 이렇다. 지난해 3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1291억원 규모의 영상장비 수가인하 방안이 통과하자 병원계는 1500억원대의 손실을 주장하며 법적 절차에 들어갔다. 병협은 같은 해 10월 복지부를 상대로 한 상대가치점수 인하고시 처분취소 소송에서 승소했다.


복지부는 즉각 항소했고, 올해 4월 서울행정법원은 다시 병협에 승소 판결을 내렸다. 병원계는 복지부와의 갈등을 무릅쓰고 영상장비 수가인하에 제동을 걸었지만, 정부는 행정적 절차가 패소의 원인이라며 다시 약가 인하에 들어갔다. 이후 건정심 소위를 거쳐 1180억원 내외의 수가인하 방안 4~5개를 마련해 정책을 밀어붙이는 모습이다.


지난 2006년 가톨릭대 여의도 성모병원 사태로 촉발된 임의비급여 소송은 6월 18일 대법원 판결로 일단락됐다. 대법원은 여의도 성모병원이 복지부 등을 상대로 제기한 과징금부과처분 취소 청구 상고심에서 선택 진료비에 대한 부당이득 징수에만 상고를 기각했다.

 

나머지 임의비급여 부문은 부분 파기해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했다. 대법원은 "일반적으로 임의비급여를 인정할 수 없다"면서도 "의사는 최선의 진료를 할 의무가 있다"며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부당청구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도 밝혔다.

 

대법원이 제시한 조건은 △건강보험 틀에서 비급여 절차와 기준이 없고, 치료의 시급성 등 불가피성이 인정될 때 △안전성과 유효성 등 의학적 필요성이 입증될 때 △환자에게 사전에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받았을 때 등이다.

 

대법원의 판결 취지는 임의비급여를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3가지 조건을 충족할 경우 부당청구로 보지 않는 의학계의 사정을 인정했다.

 

대법원 판결 직후 문정일 여의도 성모병원장은 기자회견을 자청 "지난 5년간 병원의 도덕성이 오해를 받았는데, 앞으로 생명을 우선하는 진료환경을 마련하게 됐다"며 "고법 환송이 아쉽지만 사안별로 대법원이 제시한 기준에 맞춰 자세히 입증하겠다"고 말했다.


 

개별 진료과와 의사회 차원의 송사도 복잡한 상황이다. 이비인후과 등 의사 58명은 지난 4월 심평원의 비디오안진검사를 두고 집단소송을 벌여 승소했다. 심평원이 지난 2005년 6월부터 2010년 6월까지 비디오전기안진기를 사용해 시행한 검사를 모두 비급여로 보고 환수 또는 정산 처분을 내리자 반발한 것이다.


대한안과의사회는 지난 2월 백내장 수술 DRG 수가인하 항소심에서 패했다. 지난 1월에는 서울대병원과 심평원이 요양급여비용 18만원 삭감을 놓고 법정에서 얼굴을 맞대는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소송이 추진 중인 사례도 적지 않다. 대한의사협회는 건강검진 당일 진찰료 환수와 관련해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대학병원을 포함해 총 40곳의 의료기관이 참여 중인 원외처방 약제비 소송은 서울대병원이 2심에서 패소해 사건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지난해 세브란스병원과 가톨릭중앙의료원·서울아산병원·한양대의료원 등 17개 병원은 1심에서 패소했지만, 올해 2월 강원대병원은 건보공단을 상대로 승소했다. 원외처방 약제비 소송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형국이다.

 

약가인하 실시로 법원 문(門) 두드린 제약업계
제약업계가 보건당국을 상대로 벌이는 소송 규모도 의료계 못지않다. 하지만 제약업계가 최근 대규모 약가인하에 반발해 소송을 추진하다 포기한 사례는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정부와의 불편한 관계를 피하려는 조치로 보인다.


그럼에도 보건당국을 상대로 한 제약업계의 소송은 끊이질 않는다. 올해 들어 원료합성, 생동성 조작 등에서 건보공단을 상대로 제약업계가 승소 판결을 이끌어냈다.


국내 주요 제약사인 종근당과 삼일제약은 지난 2월 생물학적동등성시험 조작 소송 항소심에서 건보공단을 이겼다. 공단이 90여개 제약사와 4년 이상의 지루한 법정 다툼을 벌였으나 패소한 것이다. 231개 품목에 1182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소송이었다. 서울서부지방법원 민사12부는 같은 달 건보공단이 삼일제약 등에 대한 부당이득 반환과 채권자 대위 청구를 기각했다.


원료합성 문제도 제약업계와 보건당국이 소송에 휘말린 대표적인 사례다. 건보공단은 지난 3월 국제약품과 벌인 원료합성 소송에서 패소해 항소할 수밖에 없었다. 공단은 해당 제약사에 176억원대 배상액 지급을 청구했지만 패소함에 따라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을 기다리게 됐다.


건보공단은 지난 1월 기준으로 30개 제약사와 벌인 원료합성 특례위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25% 내외의 승소율을 보였다. 승소한 제약사는 일코오롱제약과 한국유나이티드제약, LG생명과학 등이며 그 금액은 54억5000만원이다. 반면 경동제약과 국제약품, 동국제약, 동화약품, 보령제약 등 대다수 제약사에는 졌다.


특히 지난 1월 20일 서울중앙지법은 동국제약과 국제약품, 동화약품, 영진약품, 이연제약, 종근당, 한미약품, JW중외제약에 대한 건보공단의 소송을 기각했다. 소송에 나선 제약업계가 원료합성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철원 리베이트 관련 소송에서는 대다수 제약사가 승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약업계는 지난 4월부터 적용된 1조원 이상의 약가인하 소송에서 용두사미 결론을 냈다. 정부는 일괄 약가인하로 올해 1조원 이상의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할 것으로 내다봤다. 2013년과 2014년에는 각각 연간 1조7000억원 규모의 재정을 절감할 전망이다. 심평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는 지난 1~2월 건강보험에 등재된 의약품 1만3814개 중 6506개의 약가를 인하키로 했다.


대규모 약가 인하에 제약업계는 상위 제약사를 중심으로 소송에 나설 방침이었으나, 정부와의 갈등을 우려해 결국 포기했다. 그러나 정부의 완승으로 끝난 약가인하는 또 다른 불씨를 남겼다는 평가다.

 

정부 행정력 낭비 커…관련 업계 소송비용 휘청
정부와 의료·제약업계의 송사는 행정력뿐 아니라 막대한 소송비용 부담으로 이어진다. 대표적으로 영상장비 수가인하는 지난 3월 건정심을 통과했음에도 다시 건정심 안건으로 의결돼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를 두고 건정심 위원장인 손건익 복지부 차관은 "건정심 위원들 스스로 우리의 결정을 존중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으로 이 같은 사례는 다시 불거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11월 영상장비 수가인하 관련 1심에서 승소한 병원계는 12억원이라는 소송비용을 마련하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62개 의료기관이 1억2550만원으로 시작한 소송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무엇보다 8억8000만원에 달하는 성공보수금이 문제였다. 여기에 항소심이 이뤄지면서 3억2000만원의 비용이 추가로 들었다. 병원계는 10억원이 넘는 거액을 들였지만, 실익은 그리 크지 않았다. 정부 역시 과감하게 추진한 정책이 장기간 지연되는 행정력 낭비를 되풀이했다.


올해 상반기 대형로펌 변호사들은 제약협회를 열심히 찾아다녔다. 업계 관계자들은 “국내에서 알아주는 변호사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제약협회를 방문한다”고 비유했다. 대규모 약가인하에 대한 제약사들의 소송 일감을 차지하려는 로펌 간의 치열한 비즈니스를 빗댄 표현이었다. 실제 소송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나 정부 정책이 결국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릴 뻔한 사례였다.  


법무법인 현두륜 변호사는 “행정소송은 정부의 재량권을 인정한다는 측면에서 승소율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정부 정책에 대해 확실한 반대 근거와 피해사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사법부를 이해시키는 전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여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
메디라이프 + More
e-談